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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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3,319
- 작성일21-04-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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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한 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과 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1239년 전 수천 자 금속활자 존재는 사실. 추정이 사실을 뒤엎는 아이러니?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의 기획을 시작하면서 제1〜2에서 진위논쟁의 정확한 내막을 전달하기 위해 (특집)기획기사를 시작함을 알리면서 출처 및 소유권 이동상황 등을 살펴보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건 금속활자 소유권은 다다(작고)→ 구키야 마코토→ 박진구→ 김환재(작고)→ 김병구→ 이준영→ 이정애(김종춘)로 순차 연결되었고, 흐름상 순리적 상황이었다. 또한 관련자들로부터 사실 확인 증명서 등도 징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당국(문화재청)은 “...고려시대 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출처와 소장경위가 불분명하고...”라는 이유 등으로 (보물)지정을 부결하였다. 이에 소장자가 강력반발, 국회로까지 번져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국보·보물)지정을 위한 심의를 함에 있어 발굴유물이 아닌 관계로 출처파악이 한계에 부딪친다면 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적 기법 등을 동원하여 연대 및 위조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본건과 같이 세계의 활자(인쇄)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연대측정 및 과학감정은 특히 중요하다.
다행이 본건 금속활자에 있어 다수의 활자로부터 먹을 채취하여 국내·외 3곳의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하여 결과보고서(먹, 11〜13세기)를 받았으며, 또한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1년에 걸쳐 투과조사, X-ray CT조사, 자외선·적외선, 성분, 결정구조 분석 등, 다양한 과학기법으로 특이 흔적(위조여부) 등을 심도 있게 관찰(조사)했다.
이렇게 탄소연대측정 및 위조흔적을 찾아내기 위한 각종 기법의 과학적 조사의 결과는 먹의 연대는 위 [그림2] 자료의 연대측정 분석결과(표)과 같은 11〜13세기 또는 그 이전이며, 616페이지에 이르는 (별책)금속활자 과학적 조사의 결론인 ‘투과 및 CT조사 결과 접합된 흔적이나 균열이 관찰되지 않아 한 몸체로 주조된 것으로 보이며...(중략) 표면 분석결과 덧칠, 유기물 등은 확인되지 않음’이었다. 즉, 활자의 먹은 고려시대의 먹이고, 위조흔적은 없다는 것이다.
‘먹의 탄소연대가 고려 또는 고려이전이며, 위조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탄소연대측정 및 과학감정의 결과는 객관적 사실로서 이건 금속활자의 운명을 결정할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2017년 4월 13일 ‘증도가자(고려금속활자) 보물 지정 신청에 대한 문화재위원회 검토 결과 발표’에서 특이점(위조 흔적)은 없고, 탄소연대는 고려시대일 수 있으나 그 외, 각종 이유를 내세워 탄소연대 수용을 유보하였고, 표준 비교대상조차 없는 서체비교 및 연구영역인 주조방법과 조판실험 등을 내세워 고려시대 활자일 수도 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면서 지정을 부결하였다.
사실 문화재청이 부결사유로 내세운 갖가지 사유들은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어찌 보면 일종의 추정이다. 그러나 ‘먹의 탄소연대가 고려 또는 고려이전이며, 위조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탄소연대측정 및 과학감정 결과는 신뢰성이 담보되어질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추정이 객관적 사실을 지배한 듯 하며, 지정부결의 사유로 ‘연대 및 진위확인’이란 검증의 본질을 비켜난 “...출처와 소장경위가 불분명하고..”란 논리차용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의 계월필경 등에서 보여 지는 바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목판인쇄는 활발하였으며,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중기를 넘어가면서 활자 인쇄를 제작한 사실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1241년에 발간된 동국이상국집에 고종21년(1234)상정고금예문을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까지 남겨져 있다. 증도가 해설서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 번각본으로 발간되었으나 주자본을 목판으로 번각하였다는 내용까지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사용된 글자수는 1회 사용 628종, 2회 이상 사용 966종 8717자이다. 도합 1954종 9344자가 증도가 제작에 사용된 것이다. 이는 1239년 이전에 최소 이정도의 금속활자가 존재한 것에 대한 객관적 증명이다. 또한 최초의 활자서적인 직지에는 14,000여 활자가 사용되었고, 더하여 상권 활자까지 작년 복원되어 30,000여자에 이르고 있다고 청주 고인쇄박물관은 홍보하고 있다. 조선 초의 계미자는 수십만 자(字)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각종 기록들을 통해 1239년 이전 금속활자가 수천점 이상 제작되었을 것이란 점은 넉넉히 인정(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2010년 기준)에서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자와 북한박물관 소장 전자 등 2점뿐이었고(이후 북한에서 고려활자 5점 발굴), 활자본은 1,4000여 자(字)가 사용된 1377년의 직지심체요절 하(下)권이 존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9월1일 서지학계의 권위자인 남권희 교수가 고려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의 존재를 알려 파문을 일으키면서 반전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청주시는 2003년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복원을 위한 기초조사연구서를 펴내면서 9,344자의 활자본을 연구·분석했다.)
2010년 9월 남 교수의 주장으로 알려진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는 문화재·고미술계를 뜨겁게 달구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먹의 연대가 고려 또는 고려이전이며, 위조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탄소연대측정 및 과학감정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부수적인 요인들로 인해 2017년 4월 문화재(보물)지정이 부결됐다. 이에 소장자 및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을 수행한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남권희 등 32명)이 반발하였음은 물론이고, 급기야 국회 학술토론회 및 실물공개 등을 통해 국민적 관심사항으로 부상했다.
25페이지에 이르는 문화재청의 보물지정 부결 발표 전문은 지금도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으며, 부결이유 등은 비교적 상세히 설시되어 있다. 이러한 결정문을 살펴본 문화재계의 상당수 인사들은 과연 합리적이며 상식적인가에 대해 회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초학술조사 연구팀은 강력반발하면서 각종 국내·외 심포지엄을 통해 부결의 부당성을 알리면서 검증(지정조사단)팀과의 끝장 토론을 희망하면서 국민들의 심판을 요청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어느 쪽 논리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본건 고려금속활자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어낸 활자(일명 ‘증도가자’)가 맞다면 세계활자(인쇄)역사를 바꿀 혁명적 사건으로 국가적 경사다. 솔직히 증도가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다’라고 할 증거는 더욱 없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오래된 (고려)금속활자란 점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렇게 오래된 유물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번각본으로 찍어낸 1239년 이전 이미 수천 점의 금속활자가 존재하였던 것은 사실 아닌가? 문화재청의 부결논리가 왠지 공허해 보인다. 서체는 비교대상인 표준 글자가 없고, 주조방법 및 조판 등은 연구대상 영역이 아닌가? 객관적 사실(연대 및 과학감정)이 각종 추정에 눌러 빛을 바래고 있는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관계당국은 속기록을 공개하고, 공개토론을 통한 진실규명의 길을 찾아야
본건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진위공방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문화재청이 소장경위를 나름대로 조사하였음에도 “...출처와 소장경위가 불분명하고..”란 논리와 지정조사단이 구성되어 각종 조사를 진행 중이던 2015년 10월 국과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모 언론이 청주 고인쇄박물관 소장 증도가자 7점은 가짜라는 단독기사로 인해 거의 모든 언론들이 국과수 관계자발 기사를 통해 가짜로 대서특필하면서, 다보성(김종춘) 소장 금속활자 101점을 가짜로 인식케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2017년 4월 부결 발표문에는 특이 흔적(위조)이 없다고 했다. 정말 모를 일이다.
특히, 소장경위 등과 관련하여 중앙일보는 2013년 7월 18일 문화재계의 영향력 있는 주요 인사를 어렵게 인터뷰하여,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엇갈릴 수 있다” “개성에서 나온 북한 유물이 여기 있으면 뭐가 되나. 게다가 소장자가 고미술상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게 아무리 좋다 해도 (문화재 지정으로)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특종성 기사를 보내기도 했다. 실로 무책임하고 무서운 발언이다. 일이 이쯤 되면 고미술상인이 갖고 있기 때문에 진위를 떠나 무조건 지정은 안 된다는 암시 아닌가?
2010년 9월 1일 시작된 논쟁이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 팀 구성과 진품 결론 및 이를 믿을 수 없다면서 기초학술조사를 (재)검증하기 위한 지정조사단이 구성되어 각종 분야 재검증을 시행하였고, 2016년 12월 분야별(연대 및 각종 과학감정, 서체분석, 주조방식, 조판실험 등) 재검증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결정적으로 밝혀낸 것이 없기 때문에 또다시 ‘보류’로 결정 날 것이라는 기사들이 작성되기 시작했고, 특히, 결정(2017.4.13.)이 임박하여 지정조사단에서 ‘지정보류’를 권고(건의)할 것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4월 13일 오후 (지정)부결을 공식발표하였다. 예상 외 상황이었다.
이에 소장자 및 기초학술조사 연구팀이 강력반발하면서 심포지엄 등을 통해 (부결)반박논리를 전개해 나갔으며, 그해 9월 28일 국회(노웅래·이철규 의원 공동주최)에서 고려금속활자! 문화재인가? 아닌가? 란 주재로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어 열띤 공방을 벌였다. 당시 참석 의원들은 “문화재청의 결론에 대해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인 것 같지만 가치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질책하기도 했다.
토론회의 열기는 국정감사에도 연결되어 그해 10월 국감에서 유성엽 교문위원장, 송기석(국민의당) 의원 등은 김종진 문화재청장에게 문화재 지정을 부결한 지정조사단의 전문성과 취득 경위, 검증 방법 등을 질문하며 문화재 지정 부결에 대한 문제점을 따졌고, 이철규 의원은 (심의)녹취록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인 2017년 11월 4일 일요신문이 (심의)속기록을 입수하여 고려금속활자 ‘증도가자’ 문화재 지정 심의회 속기록에 드러난 ‘부결 짜집기’ 정황을 [단독]기사로 일부 게재하여 충격파를 불러왔다.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회의록에 적힌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의 의견은 ‘증도가자는 고려금속활자가 맞으나 분석방법이 발달할 때까지 유보하자’로 되어 있었다. 즉,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의 ‘유보’ 의견을 문화재위원회 심의회에서 ‘부결’로 뒤집었고, 이를 문화재청이 주도하였다는 내용이다(일요신문 지령 제1330호. 2017.11.4.)
일요신문의 보도내용(속기록)은 자못 심각했다. ‘... (중략) 한 위원은 “(증도가자가) 진품일 가능성이 많다”고 증언하면서 “법적으로 가짜가 아닌 다음에는 문화재를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 우리 위원회가 그런 중요한 금속활자를 가짜로 했느냐 비난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신청자(소장자)가 그것을 팔아먹는 날에는 어디에 팔아먹느냐. 그러면 형사처분 받아야 한다.” 또 다른 위원은 “팔아먹는 상황이 발생되면 그 비난의 화살이 왜 부결시켰느냐 하고 들어온다.” 이후 한 위원은 결정적으로 “부결을 써놓았는데 그게 흔들리면 어떻게 되더라도 사유부터 써보자. 첫 번째 뭘 쓸까? 증도가자 이야기를 쓸까?”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부결 회의를 시작한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과 표면조사에 의하면, 고려금속활자 여부에 대해 고려시대 제작이 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이라고 하자, 한 위원은 “가능성이 있지만 으로 이렇게 쓰자”고 (말을 보탠다). 또 다른 위원은 가능성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장경위 번복 등을 이유로 신청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 이어 “소장 경위는 설명하면 할수록 점점 꼬여서 영원히 그것은 해줄 수가 없다”며...’
위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화재청이 고의로 부결을 주도한 꼴이 된다. 일이 이쯤 되면 국정조사를 넘어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세계 활자(인쇄)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국가적 경사를 고의로 부결시킨 것이다. 흑막을 가려내기 위해 관계당국(문화재청)은 마땅히 속기록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 더하여 기초학술조사연구팀과 끝장 토론을 펼쳐 진실규명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남권희 교수 등 기초학술조사팀은 ‘지정조사단 위원(12명)들은 제대로 된 금속활자 논문한편 없는 비전문가들’이라면서 끝장토론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속기록 공개와 끝장토론이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다. (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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