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금속활자(?)‘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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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1-04-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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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원, 지정조사단원은 왜 공개토론 등을 기피하면서 침묵하는가
기초학술조사연구팀vs지정조사단(문화재위원) 누가 역사의 죄인들인가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지정조사단은 1년6개월 동안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 개발 외 무엇을 했나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3편(4.14)기사에서 증도가자가 2017년 4월 13일 보물지정이 부결된 후 오히려 논란이 격화되어 국회로 비화되어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고,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되어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어 가는 과정에서 정세균 의원 등으로부터 “금속·서예·조판·주조분야 국내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재 가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촉구 등을 받게 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원점에서 재검토용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실현가능성 없는 시간 끌기 용 수사(修辭)임 밝혀져 당사자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학술조사를 주도한 남권희 교수는 “그 시대(1230년대) 무슨 가짜 활자가 있단 말인가? 위조활자면 벌써 밝혀졌을 것 아닌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및 상정고금예문을 찍은 금속활자만 수 만자가 아닌가? 탄소연대 모두 고려시대이고, 철저한 감정결과 위조흔적 전혀 없는데, 어떻게 고려활자가 아닐 수 있단 말인가?” 라며 격양된 심정을 토로하였고, 더하여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진실을 밝혀 세계최고의 활자를 지켜내겠다”면서 비장한 심정을 밝혀 향후의 진행상황이 더욱 기대되는 상황임을 예고(지적)하기도 했다.
부결결정과 상관없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진위논쟁은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기초학술조사와 이를 검증한 지정조사단의 내막을 살펴본다.
서지학자인 김성수, 남권희, 조형진 교수는 2002년 청주시로부터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증도가’)’ 복원을 위한 기초조사연구를 의뢰 받고, 1년에 걸쳐 ‘증도가’의 성립과 체제 및 전체 수록 글자(9,344자)분석을 통한 글자별 대조분석과 빈도수 등을 정밀 조사했다. 더하여 고려의 주자인쇄 기술과 ‘증도가’간행배경, 각종 판본의 글자의 마모도 등을 통한 간행시기를 비교하는 등, 각종 조사를 전방위적으로 진행했다. ‘증도가’에 대한 최초의 종합조사인 것이다.
남권희 교수가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를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하반기경이며, 처음에는 위작일 것이라 생각되어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실물활자가 증도가 번각본의 글자와 유사하다고 판단되어 수년에 걸쳐 실물활자와 증도가 전체 글자(9,344)와 비교분석한 결과 ‘증도가’를 찍은 활자가 틀림없다고 판단되어 2010년 9월 1일 ‘증도가자’ 발견을 알린 것이다.
이후 학계 일각의 시비 등으로 진위논쟁이 일어나면서 남권희 교수팀은 2010∼2013년 국내·외 학술대회(미국, 일본 등)에서 ‘증도가자’의 역사성 등과 관련된 각종 (진품)근거 등을 꾸준히 주장하거나, 자료2와 같은 각종 저술 등을 발간하면서 세계최고 금속활자의 학술적 입증을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이런 과정에서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자 문화재청은 2013년 10월 종합학술조사 추진을 결정했고, 정세균 의원의 노력으로 예산 2억 원이 배정되어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을 발주한 결과, 그간의 연구 업적 등이 고려되어 남권희 교수의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 결정됐다.
이에 경북대 산학협력단(일명 ‘남권희 팀’)은 김성수(이론⋅판본분석 총괄), 홍완(과학분석 총괄), 이완우(서체연구 총괄), 남권희(주조⋅조판연구 총괄) 등 33명 학자들이 2014. 6. 10∼ 11. 30일까지 그때까지 발표(발간)된 수백 종의 모든 자료들을 섭렵⋅연구⋅분석한 결과 “..7)고려시대에 주조되고 일부 사용된 활자임을 확인, 8)향후 대상 고려활자의 금속성분과 주조방법, 조판방법에 대한 추가연구가 진행되어야만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가 완성될 수 있음..(보고서 370p)”이란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그해 12월 문화재청에 제출했고, 이런 내용(진품)들이 2015년 1월 언론에 보도되자 또다시 격론이 시작됐다. 진품을 주장한 남권희 교수가 주도하였기에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논란 속에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은 2015년 2월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 결과를 재검증하는 지정조사를 의결했고, 이에 그해 6월 단장 흥선 스님(김명규) 및 배현숙(서체비교), 선광민(연대측정), 정광용(제작기법) 등, 12명의 지정조사단이 구성되어, 그해 7월에서 9월 사이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 (보고서)평가 및 추가검증관련 의견서 제출로 활동을 시작했다.
추가검증을 시작하면서 분석결과보고서 제40∼64페이지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과정 및 결과에 절대적 신뢰를 표시한 김명진 (주)네오시스코리아 방사선기술연구소장을 제외한 11명의 지정단원들 모두 기초학술조사 연구결과를 부정 또는 미흡으로 판단, 실현가능성과는 별개로 기초학술 연구결과를 무조건 배척하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이는 각종 추가검증 방법을 나열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남권희 교수 등에 대한 시기·질투 등, 고질적인 학계의 알력까지 더해져 증도가자의 운명은 진실규명과는 거리가 먼 세력다툼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장 속에 내팽겨 쳐진 상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혼탁한 상황 속에서도 흥선(김명규) 단장, 곽노봉, 배현숙, 정제규 지정단원들마저 최소한 서체의 유사성(제출의견서)만은 인정했다. 흥선 단장이 ‘서체의 완전일치 여부까지는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사족을 붙였지만 말이다. 실물활자와 번각본 서체가 어떻게 완전일치 한다는 말인가?
증도가자 진위 논쟁에서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7점은 위작이라 발표하여 대형파문(해프닝)을 일으킨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서체분석을 맡아 비교대상인 임진자에 비해 유의미한 수준의 모호성(?)을 언급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활자와 번각본 서체의 유사도는 인정했다. 가장 중요할 수 있는 활자와 (번각본)서체의 유사도만은 실질적으로 모두가 인정했다.
그 시대(1230년대)는 위조활자 등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실물활자와 번각본의 서체가 거의 유사하다면 그 책을 찍은 활자가 맞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이를 갖가지 해괴한 논리로 부인하거나 변절시키려 하려 함은 상식의 붕괴를 시도하는 것이다. 진품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15년 6월 지정조사단이 구성되어 2016년 12월까지 활동하면서 모두 4차례 (2015.6.4./2015.12.2./2016.4.8./2016.12.6.)걸쳐 전체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동 흔적들을 보이고는 있으나, 실제적으로 살펴보면 서체분석은 국과수에서 진행했고, 각종 과학감정은 문화재연구소가 주도하였으며, 탄소연대측정은 감정기관의 분석과정 및 신뢰도를 재검증하는 수준에 그쳐야 했다. 그러므로 지정조사단이 실제적으로 행한 일은 분석결과보고서 제348∼393쪽에 편철된 금속활자장 임인호가 수행한 주조·조판(재현)실험에 대한 결과보고서(주조실험 최창옥, 조판실험 정제규)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기초학술조사 연구결과를 부정하기 위한 회의만 수차 개최하였을 뿐, 독자적인 노력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기초학술조사 연구팀 33명의 학자들이 그때(14.6)까지 발간(발표)된 수백 종의 사료(논문·저서)들을 섭렵해가면서 문화재청이 연구제외 분야로 지정한 주조·조판실험까지 진행하면서 6개월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661쪽의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것에 비해, 12명의 지정단원들이 1년 6개월에 걸쳐 수행한 실질적인 실적은 결과보고서 2편에 불과하다. 그것도 수시회의를 통해 기초학술조사 연구팀의 결과에 대한 다각적인 비판 논리에 골몰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지정조사단이 왜 구성되었고,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남권희 교수를 반대하는 인사들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사실 아닌가? 물론 비난을 의식, 분석자문회의까지 3차(2016.10∼11)에 걸쳐 진행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 개발을 위해 발족되었다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학술조사팀의 끝장토론을 외면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지정조사단은 2016년 12월 “…특이점(위조흔적) 발견할 수 없었고,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은 상한 11세기 초, 하한 13세기 초, 중간 값 12세기 초로 나타났으나…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검증방법이 더 개발되고 발전될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됨”이란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 유보의견마저 2017년 4월 13일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지정 부결로 결론 났다.
세계최고 금속활자의 진위를 규명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는, 언론의 비난을 피하면서도 기초학술조사팀의 연구결과를 반대하기 위한 논리구성에 골몰했다. 이런 상황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속기록(2017.4.13.) 전반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 결과 소장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상한 논리를 개발하여 (지정)부결을 발표했다.
문화재위원, 지정조사단원은 왜 공개토론 등을 기피하면서 침묵하는가
기초학술조사연구팀 vs 지정조사단(문화재위원) 누가 역사의 죄인들인가
우선 시대상황(1230년대)만 파악해도 수많은 금속활자의 존재를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 무신정권 최우의 집권시기(1219∼1249)는 대몽항쟁기로서 수선사 및 백련사 중심의 수많은 불교서적 간행(자료3), 금속활자 증도가 및 번각본 발간, 2,000여명 각수들에 의한 재조(팔만)대장경 제작(1234∼1251),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 발간(1234∼1241. 전50권, 28부), 방대한 동국이상국집 발간(1241) 등, 활자제작의 활황기였다. 최소 수 만자의 금속활자가 제작되었다.
당시의 상황이 이러함에도(수많은 금속활자 제작), 그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자 및 북한 개성역사박물관의 소장 전자 등, 2점의 고려활자가 존재하였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9월 남권희 교수에 의해 증도가자를 찍은 금속활자 수십 자가 발견된 것이다. 어찌 보면 놀랄 만한 일이다. 다량 발견된 증도가자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장기간 고미술협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고미술업계의 거상인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 소유로 알려져 논쟁은 더욱 뜨거웠고, 이로 인해 더욱 치열한 검증을 거치는 바람에 통상 1년 내외에서 결정되는 문화재 지정여부가 7년을 끌다 출처불명을 이유로 부결시켰다. 절대적 증명력이 인정되는 탄소연대측정, 각종 과학감정의 결과를 무시하고 상인 소장을 핑계로 부결시킨 것이다.
고려금속활자가 위조되었다면 7년간의 검증과정에서 왜 밝혀지지 않았겠나? 특히, 국과수가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7점의 고려금속활자가 가짜라고 대형파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다보성갤러리 소장 금속활자도 당연히 가짜로 인식되어 대대적인 수사까지 벌였지 않았나?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국과수의 가짜파동이 모조리 부정되는 대형 해프닝에 불과하지 않았나? 국과수 및 일부 언론과 진품을 부정하고픈 일부 학자들의 담합에 의한 가짜몰이 파동으로 인식되지 않았나? 관련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으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무엇 때문에 가짜 만들기에 안달이 났단 말인가.
2017년 4월 13일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부결은 7년 논란의 종식이 아니라 관련자(소장자 및 기초학술조사연구팀)들의 반발 및 국회의 개입, 질책 등으로 부활하여 도리어 불타오르고 있음은 누차 지적한 바와 같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결논리가 새로운 상황을 연출시킨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부결발표 이후 국회로 비화되어 현재의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기초학술조사팀의 각종 반박논리와 공개토론 요청 등에 지정조사단 및 문화재 위원들은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초학술조사팀의 각종 반박논리에 ‘고려사항이 없다’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의례적인 반응 외, 책임 있는 지정조사단 및 문화재 위원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진위 논쟁의 과정인 기초학술조사연구 및 이에 대한 지정조사단의 재검증 및 문화재청의 부결발표와 이후의 국회 비화 등, 일련의 과정에서 왜 기초학술조사팀이 그토록 부르짖은 끝장토론을 외면하였는지, 부결발표 후 국회 토론 등 각종 심포지엄에서 심사위원(문화재위원)들이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했는지는 또 다른 의혹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건은 세계최고 금속활자의 생사를 다루는 실로 중대한 문제다. 그러므로 어물쩍하게 넘어갈 일을 절대 아니며, 철저한 진상(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상황이다. 기초학술조사연구팀이 가짜를 진짜로 만들려고 하였다면 천인공로할 일이고, 지정조사단 및 문화재 위원이 진실을 묻으려 했다면 역시 용서 받지 못할 역사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떻게 밝혀야 한다는 것인가? 실로 지난한 문제일수도 있겠으나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는 생각처럼 그리 복잡하지 않다.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의 과학감정 등, 절대적 증명력을 무시하고 각종 가공논리에 입각하여 부결을 발표했지만, 이는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억측, 가상논리에 불과함으로 부정되어짐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누가 역사의 죄를 짓고 있단 말인가. 기초학술조사연구팀이 가짜를 진짜로 만들려 했단 말인가. 이해관계에 얽매인 지정조사단 및 문화재 위원이 진품을 뭉개려 했단 말인가. 신청활자가 어떻게 가짜이며,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더욱이 고려시대 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논리… 진실규명의 외침은 넘쳐 흐르고 있다. 이제 책임 있는 지정조사단 및 문화재 위원들은 더 이상 숨지 말고 재검증 및 공개토론 현장으로 나와야 한다.(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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