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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진실 규명

세계최고 금속활자(?)‘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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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1-04-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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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불가능’, 잘못된 전제(주자본=번각본)에서 출발된 부정확한 결론

5〜8% 수축률 차이(번각본)는 각종 문헌 등으로 입증된 공지의 사실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한 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과 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 (자료1) 증도가자 유리 유(琉)字 (사진제공=다보성고미술)  © 박명섭 기자


번각본 수축률 쟁점…활자크기들의 평균치로 실험(조판불가능) 타당한가?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제9편(3.17) 기사에서 주조방법 등을 짚어보면서 다보성갤러리(대표 김종춘) 소장 (문화재)신청 금속활자의 주조방법은 활자측면에 단층구조가 보이고, 상하분할선이 보이거나 대다수 활자의 측면에서 연마흔적이 나타나는 등, 각종 주물사주조법 제작의 전형적 특징들이 나타나는 점 등으로 최소한 밀랍주조법은 아니란 점을 지적했다. (밀랍주조법으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수 없음-기자주)

 

문화재청은 “주조 재현 실험 결과, 활자 제작과정에서 제거해야 하는 목형을 빼내기 어려운 활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밀랍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된다”고 설시했다. 정말 사실이 그러할까? 신청활자들의 대략적인 크기들은 10mm〜13mm(주로 세로·가로) 및 6mm〜7mm(높이)에 불과한 소형주조물(활자)들이다. 주조과정(1차)에서 아래 틀에 심겨지는 목형(부자, 父字)은 높이 6mm〜7mm의 절반가량인 3mm〜3.5mm내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 어떤 어려운 활자들도 활자면 및 몸통 등의 손상 없이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또한, 글자면과 바탕면을 분할한 목형을 만들어 활자를 주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설시했으나, 필요성과는 별개로 정확하게 합형하면 분리주조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쨌든 활자상태로 보아 밀랍주조법은 최소한 아닌 것이다. 향후 (재)실험 등을 통한 진실규명이 기대된다.

 

▲ (자료2) 활자 조판 이미지(남권희 교수 연구실 활자 조판사진)  © 박명섭 기자


주조방법과 더불어 첨예하게 대립한 또 다른 부분은 조판(실험)부분이다. 조판 검증(재현)실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 임인호가 진행하였으며, 결과보고서는 정제규 지정조사단원이 작성하여 기록 379〜393Page에 편철되어 있다. 사실 신청활자로 찍었다는 활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번각본의 광곽크기에 맞춰 조판실험을 하여 정확도(가능)를 산출해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활자본에 대한 번각본 수축률은 쟁점이다.  

 

문화재청은, 우선 “조판 실험 결과, 신청 활자 중 홈형 활자의 경우 세로 평균치보다 그 크기가 작은 활자가 1자 이상 포함된 경우에는 조판이 가능하였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는 조판이 불가능하였다. 홈날개형 활자의 경우 가장 작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가능하였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하였다. 홈형과 홈날개형의 혼합조판에서는 1행 15자로 되어 있는 증도가 서책과 달리, 1행에 14자만이 들어갔으며 증도가 서책에 비해 좌우 열이 균일하지 않았다”고 총괄적으로 설시했다.

 

더하여 구체적으로 초주갑인자인 석보상절 및 임진자인 속명의록 주자본과 복각본의 실측을 통한 주자본과 번각본의 변화율을 비교하면서, 특히 속명의록의 광곽변화율(활자본과 복각본)을 신청활자의 광곽변화율로 변환시켜 적용하는 방법으로 진행한 조판실험의 결과 등을 도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실험의 결과 홈형, 홈·날개형의 평균크기 활자로는 조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청활자를 증도가 번각본을 찍은 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더하여 “증도가로 찍었다는 활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번각본이 활자본과 거의 같다는 것이 이 논의와 실험의 전제가 되어야 하므로 지정조사단의 실험은 적절히 이루어졌다”면서,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기초학술조사연구팀 및 비판론자들은 “활자본과 번각본의 수출률은 평균 1〜2cm차이 남(번각본 수축)은 각종 기록(문헌)을 통해 증명되는 상황이다. 증도가 번각본 44장의 광곽이 제각각 다르며, 글자의 크기, 굵기 등이 다른 상황에서, 한 판에 들어가는 활자조차도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번각본의 글자로 활자 크기를 추정하여 복원하여 실험한 것은 잘못된 근거에서 출발한 검증오류다. 특히, 시간적 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번각 판의 본질적 현상(축소 등)을 무시한 문화재청의 (조판)검증은 수많은 고문헌들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평균 함수율(8%)만 살펴봐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평균 수축률만 적용해도 모든 조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질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청과 기초학술조사팀의 첨예한 논쟁은 우선 ‘증도가’ 번각본의 활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자본과 번각본(목판)의 함수율(수축률)에 관한 축척된 데이터가 없고, 더하여 고려 시대의 조판 방법에 대한 관련 기록과 문헌이 없는 상황에서, 이에 더하여 부착식(고착식)이냐, 조립식(분리식)이냐는 기초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활자크기들의 평균치로 실험하였다는 점이다.

 

▲ (자료3)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영인본(삼성출판박물관 소장 보물 758호) (좌) 30장 A면 (우) 29장 B면 - 광곽의 크기 및 글자의 굵기 등이 확연이 다름(30장 A면 크고 굵음)


문화재청의 (조판)실험이 합당하며, 그 결과가 수용될 수 있는가의 여부 등은 우선 관련 자료들의 고증(연구)등을 통해 판단되어져야 한다. 동백 등 11명 각수들이 9,344자를 각인한 증도가 번각본은 모두 44장으로서 8행 15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39장 뒷면(B면)은 7행이다. 광곽크기(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는 17.3〜18.6cm(세로), 12.1〜12.6cm(가로)로 실측되는 등 각각이다. 자료3(29 B면, 30A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광곽의 크기 및 글자의 굵기 등이 제 각각인 것이다. 이런 차이점 등은 44장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더하여 각행 13〜15자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8〜11행으로 끝난 행도 상당수 확인되고 있다. 더하여 각 면마다 크기(굵기) 등이 다른 글자가 198자에서부터 240자까지 찍혀있다(평균 220자). 이것이 증도가 번각본의 기본 서지사항이다.

 

반면, 신청활자 중 증도가자로 분류된 활자는 59자이며, 이중 미사용 활자 8점을 제외한 51자 중 동일자 6종 14자를 다시 상계한 37자가 전체 9,344장 1,300자 정도로 찍혀있다. 그러므로 한판에 전부 들어간 경우는 없으며, 각각의 장 200여 글자에 20〜30자 정도가 (중복)사용되어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청활자 중 어느 글자가 어디에 들어가 찍혔는지에 대한 확인과, 신청활자로 찍히지 않는 글자들의 크기들을 분석하면서 (조판)검증함이 타당한 것이다.

 

주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각별히 유념해야 할 점은 주자본(활자)과 번각본의 본질적 차이 및 목판의 축소현상 고려이다. 일반적으로 번각본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판의 축소현상과 판면과 글자의 마손(磨損)에 따른 목리의 노출과 인출빈도와 보존상태에 따른 탈획, 끊어짐과 인출빈도에 따라 점차 획이 굵어지거나, 획의 가장자리에 마모가 심해 선명도가 낮아진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런 특성 등으로 번각(목판)본들은 저본인 금속 활자본에 비해 당연히 수축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후술할 각종 자료들과 초조대장경의 보각인본, 재조대장경의 보각, 그 밖의 수많은 판본 등에서 익히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도 무려 수백 권 이상의 고문헌에서 0.5cm에서 2.9cm차이를 보이고 있다. 번각(목각)의 평균수축률 8%는 고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조판불가능은 잘못된 전제(주자본=번각본)에서 출발된 부정확한 결론일 뿐

5〜8% 수축률 차이(번각본)는 각종 문헌 등으로 입증된 공지의 사실  

 

살펴본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번각본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판의 축소(수축)현상과 평균 8%정도 수축되어진다는 사실은 자료4)의 각종문헌(활자본과 번각본의 수축률 비교)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 4권의 문헌만 보더라도 주자본 대비 번각본이 0.8〜1.7cm정도로 세로수축이 확인되는 것이다(평균1.2cm).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도외시 하고 문화재청이 내세운 “증도가로 찍었다는 활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번각본이 활자본과 거의 같다는 것이 이 논의와 실험의 전제가 되어야 하므로 지정조사단의 실험은 적절히 이루어졌다”면서,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전제)논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추정(가공)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즉,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 (자료4) 주자본 對 번각본 수축률 비교자료 / 고려-조선 금속활자 판본 검토(2020. 11. 문화재청 학술대회 자료집)


주자본과 번각본의 수축률 비교 자료 등을 좀 더 살펴보면, 위의 자료4에 더하여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이 주관한 ‘고려-조선 금속활자 판본검토’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신간류편역거삼장문선고부(주자본 번각본 1.5cm차이), 삼략직해(주자본 번각본 1.1cm차이) 및 증도가 인출본 4종류(삼성본, 공인본, 대구본, 반야사본)간의 미세한 차이 등을 위시하여, 유부현 교수가 발표한 항례합판, 동몽선습 목판본과 이의 번각본 초인본과 후인본, 무신자로 인출한 논어언해 활자본과 번각본(목판), 재번각본(목판) 등에서 광곽의 차이들이 확인되고 있다.

 

▲ (자료5) 주자본과 번각본 등의 수축률 비교자료(0.4 〜2.9cm 번각본 수축 등)

 

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의 조판 (재현)실험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본지가 수집한 자료5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초주갑인자혼입보자본(주자본 번각본 0.9cm차이), 인경목할자본(번각본 0.9cm차이), 정유자(번각본 0.4cm차이), 초주갑인자본(대자 정축자) (번각본 2.5cm차이), 을해자본(주자본 번각본 1.3cm차이), 정유자본(주자본 번각본 0.7cm차이), 초주갑인자본(주자본 번각본 1.2cm차이), 계미자번각본(재번각본 1.5cm차이), 경자자본(주자본 번각본 1.5cm차이), 경자자본(1429년, 주자본 번각본 0.5cm차이), 경자자본(국립중앙도서관, 주자본 번각본 0.7cm차이), 초주갑인자본(주자본 번각본 1.8cm차이), 초주갑인자본(1,438. 주자본 번각본 2.9cm차이), 경오자체훈련도감자본(주자본 번각본 1.6cm차이), 초주갑인자본(15c. 주자본 번각본 1.2cm차이), 초주갑인자본(1,444. 주자본 번각본 0.4cm차이), 초주갑인자본(,1485. 주자본 번각본 0.6cm차이) 등등, 수많은 문헌들의 주자본과 번각본이 0.4〜2.9cm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조까지 무려 수백 권을 넘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관련 자료(증거)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조선조까지 무려 수 백 권을 넘어 활자본과 번각본이 0.4cm서 2cm넘어 차이를 보인다면 주자 본에 비해 번각본이 수축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것도 통상 8%정도의 수축률을 보인다는 것은 자료(문헌)등으로 고증되어지는 공지의 사실인 것이다. 고려 조선시대에 발간되어 주자, 본각본들 현전하는 고문헌들을 모두 조사한다면 주자본과 번각본이 최소 5%에서 통상 8% 내외의 차이(번각본 수축)을 보이는 서책들은 족히, 수백 종 속에 수천 권에 이를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진실로서 이의 연구(탐구)가 조판검증의 전제인 것이다.

 

본건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의 진위에 대한 각 분야별 검증을 함에 있어 문화재청은 조판 (실험)재현에 있어 우선 이러한 상식적인 과정(주자·주자본 대비 번각본의 수축률 고찰)은 아예 무시하고 “증도가로 찍었다는 활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번각본이 활자본과 거의 같다”는 잘못된 전제하에 일방적인 방법으로 (조판실험을 진행하여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는 조판이 불가능하였다.”고 설시하면서 실험(검증) 결과까지 제시하였으며, 더하여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고까지 발표했다. 

 

고문헌을 조금만 살펴봐도 대다수 문헌들의 주자본과 번각본이 최소 5%에서 통상 8% 내외의 차이(번각본 수축)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면서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고까지 발표한 관계당국의 처사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다.

 

▲ (자료6) 증도가자 검증관련 자료(2017. 국회 학술토론회 자료집 32p)


증도가 번각본의 총 글자 수는 44장 9,344자이며, 증도가 (주자)인쇄에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활자는 37종 51자로서 총합 약 1,300여회를 찍힌 것으로 추정(중복사용포함)되며, 통상 220자 정도가 들어가 있는 각 면(A·B)마다 중복 포함하여 20〜30자 정도 찍혀 있을 뿐이다. 한 면 200자에 들어간 글자도 모두 없을 뿐 아니라, 특히 글자의 크기도 각각이고, 번각본 광곽의 크기 역시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평균치를 설정한단 말인가! 활자(주자본)과 번각본이 차이(수축률)은 살펴본바와 같이, 활자가 상당히(5〜8%) 큰 것은 공지의 사실 아닌가.

 

문헌 고증 등을 통해 번각본이 주자본에 비해 5%에서 통상 8% 내외 정도로 수축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공지의 사실이라면 조판실험을 함에 있어 이를 포섭해야 함은 당연하다. 더더욱 활자본은 활자에 비해 고르지 않은 먹의 도포 등으로 미세하나마 어느 정도 작게 찍혀 진다. 이 또한 객관적 사실이다. 이 모든 객관적 (증명)사실을 고려하면 번각본 광각보다 주자본 광곽이 1〜2cm 정도 클 수밖에 없다. 이를 대입하면 모든 경우의 조판이 완벽하게 가능하다(혼합조판포함).  

 

조판 실험의 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홈형, 홈·날개형의 평균크기 활자로는 조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청활자를 증도가 번각본을 찍은 활자로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더하여 그 이유 등으로 “번각본이 1~2cm의 오차가 있다는 막연한 논리로 지정조사단의 실험 결과를 오류라고 말할 수 없다.” “한 판에 해당하는 글자가 모두 발견되지 않았고, 이 활자로 찍은 책의 번각본이 원본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지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활자와 번각본 크기의 평균 수치로 실험을 진행한 것은 최선의 방법이다.” “…3D 프린트를 이용해서 복원한 활자와 신청 활자의 오차범위는 ±0.01~0.02mm로 실험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국이상국집’을 활자본으로 찍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활자본도 남아 있지 않다.” “홈형과 홈날개형을 각각 조판했을 때는 글자가 부족하여 조판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번각본 ‘증도가’와 같은 글자의 순서로 최대한 맞추어 조판하기 위해 혼합 조판을 시행하였다”라고 하는 등의 갖가지 논거를 제시하면서 조판검증의 정당성 등을 설파했다.

 

그러나 신청활자의 조판검증과 관련하여, 한판에 들어가는 활자도 없는 상태에서 신청활자의 20〜30자 정도가 200여자 내외의 한 지면에 들어 있을 뿐이고, 그것도 글자의 크기도 제각각인 상태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잡았는지는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더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번각본은 수축되는 것이 분명하게 인식되는 상황인데도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고까지 발표했다. 상식을 뒤엎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조판 실험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주자본과 번각본의 차이(수축률)를 확인시켜 줄 자료(문헌)들이 차고 넘침에도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바람에 잘못된 전제(주자본=번각본)에서 출발된 부정확한 결론(조판불가능)을 내린 것 외에는 달리 추론할 것이 없다. 서지학계 공지의 사실로 되어가는 번각본 수축률 5〜8%만 적용한다면 신청활자는 모두 조판 가능함이 명백하다(혼합조판포함. 네다리제외) 이것이 실체적 진실인 것이다.

 

이미 공지의 사실에 이를 정도로 주자본과 번각본이 차이를 입증하는 수많은 자료(문헌)들이 발굴되어 있고, 더하여 향후 기초학술조사 연구팀을 중심으로 더욱 많은 관련자료(문헌)들의 발굴 등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는 향후 재검증(실험)을 피해갈 수 없음을 예고케 하는 부분이다. 고려시대의 주조 및 조판 방법 등의 (관련)기록들이 없는 상태에서, 이 분야의 규명(연구)는 본질(진위)과 관련 없는 일종의 학술연구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국위와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연구 및 문헌 등을 통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