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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진실 규명

세계최고 금속활자(?)‘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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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1-07-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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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세력다툼에 휩싸인 문화재 업계 난맥상 여지없이 드러내

증명불가능 부분에 대한 증명 요구하면서 문화재를 묻으려 해선 안 돼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 (자료1) 아들 자(子) 字 (증도가자와 고려시대 금속활자 42p)


소명된 출처가 주요 부결사유…소장자 핑계로 부결시킨 실질적 내막은?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 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제26회(7.21)에서 조판 (실험)등과 관련, “조판논란은 잘못된 전제, 외면한 증거, 망각한 역사들이 빚어낸 문화 참변으로서, 5〜8%의 공지의 (세로)수축률을 인정하고, 이에 관한 수많은 증거들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임을 지적했다.

 

조판(실험) 등과 관련하여 관계당국(문화재청)은 우선 번각본=주자본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실험을 진행시켰으며, 특히 통상 0.4〜2.9cm의 (세로)광곽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증거(문헌)들이 널려 있음에도 이를 찾으려는 노력은커녕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부결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최소변화치인 석보상설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등, 부결을 위한 의도적인 방향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주자 본에 비해 (목판)번각본이 통상 5〜8%정도 수축된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며, 번각본에서 재번각본은 또다시 수축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사실을 올바르게 직시한다면 조판이 되지 않는다는 논란자체가 생겨 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자 본에 비해 (목판)번각본이 5〜8%정도 수축된다는 공지의 사실을 인정, 이를 증명하는 널려 있는 수많은 문헌들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적 임무다. 신청활자의 세계사적 위치를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문화재 지정을 함에 있어 출처규명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장자에게 떠넘기는 관계당국의 처사는 정도를 일탈한 것이다. 출처논쟁의 내막을 해부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본건 신청 금속활자는 2010년 9월 1일 세상에 알려진 후, 다음 해 당국의 문화재 지정신청 요청에 따라 문화재 지정신청 후 6년이 지난 2017년 4월 심사위원들의 ‘식견 없음’의 자탄 속(속기록)에 진·위 영역이 아닌 출처 및 소장경위 불명을 앞세워 부결결정을 했다. 4차에 걸친 탄소연대측정 결과 고려시대이며, 각종 과학감정결과 가공(위조) 흔적 등이 없음에도 출처가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은 꼴이다. 출처와 관련하여 당국에서 여러 차례 확인을 했음에도 말이다.

 

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감정 등 절대적 증명력을 배척하고 연구영역인 서체(비교)분석, 주조·조판실험 등을 과학으로 포장시키고, 더하여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활자의 출생을 소장자가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부결한 것이다. 관계당국은 관련자(구키야 마코토, 박진규, 김병구, 이준영, 이정애 등)들에게 사실 확인 증명서를 징구함은 물론 매매과정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 결과 1995년 박진규가 쿠키야 마코토로부터 구입하여 국내로 반입시킨 후, 같은 해 김환재를 거처 의사 김병구에게 판매되었고, 김병구가 15년 정도 소장하다가 2010년 8월 당시 고미술협회장 김종춘의 손위처남인 이준영에게 판매하였고, 이후 이준영이 이정애(김종춘의 처)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관계당국이 수차에 걸쳐 확인하였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소유권 이전 경로의 전부인 것이다.

 

소유권 이전 경로가 위와 같이 비교적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 및 (문화재)심의위원들의 “북한,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심의 속기록)”는 희한한 논리의 난무 속에 하다하다 못해 출처불명을 이유로 부결했다. 무려 6년 이상의 논쟁 속에 수차에 걸친 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감정 등을 실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무엇 때문에 진·위와는 관계없는 소장자 핑계를 댄단 말인가? 문화재(유물) 진위 및 가치가 소장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점에서 관계당국의 납득할 수 없는 논리는 석연치 않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소장자인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20년 9개월(1997.3〜2017.12)동안 고미술회장을 역임한 고미술업계의 실력자로서 뜨거운 감자이며,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이 점에서 관계당국이 소장자 핑계를 대면서 부결시킨 실질적 내막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3월 제18대 고미술협회장으로 취임한 김종춘은 초기 고미술활성화 및 가짜척결을 내세워 나름 정력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06년 고미술문화대학을 설립하여 2017년까지 약 2,3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하면서 문화유산 감정 및 문화유산 교육업무에 대한 다양한 사업 등을 실시하여 고미술발전에 일정 기여했다. 그런데 그의 파란은 2009년 10월 청자감정으로 시작됐다.

 

▲ (자료2)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사진=다보성갤러리 제공)


불가능을 증명하라는 관계당국의 요구는 부결을 위한 핑계거리로 보여

청자박물관 작품 감정으로 시련이 시작되면서‘증도가자’화염에 휩싸이다

 

지난 11회 기사(3.31)의 ‘소장자에 따라 문화재의 가치 및 진·위 등이 뒤바뀔 수도 있단 말인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본건 (고려)금속활자는 절대적 증거(탄소연대측정, 과학감정 결과)들에 비춰 진품이 유력함에도 출처불명을 이유로 지정 부결했다. 즉, 거상인 김종춘 소장품이어서 지정을 부결한 듯하다. 이에 부결 직후 김종춘은 문화재업계 마피아 척결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인가. 2009년 10월 김종춘은 강진 청자 박물관에서 국내 최대 문화재 사단(일명 ‘J모 사단’)의 소개로 각각 10억 원에 구입한 청자2점에 대해 각각 1억 원에 불과하다고 감정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 여파로 그해 12월15일 고미술협회가 주최하는 ‘한국고미술대전 진짜와 가짜의 세계’전 개막식을 몇 시간 앞두고 서울 종로 경운동의 협회 사무실과 김종춘 회장 집에 검찰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후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3차례나 이어졌다. 또한 2010년 1월 29일 MBC PD수첩 ‘사라진 고구려 고분벽화’편을 제작하여 15년 전 중국에서 도굴된 뒤 행방이 묘연해진 고구려 장천 1호분과 삼실총 벽화가 국내에 유입됐으며 김 회장이 이 벽화를 구입·보관하고 있다는 식으로 방송되었고, 또 다시 경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 물론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훗날 모 인사의 양심선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모두 사실이 아니며 김종춘 죽이기 공작이었다.

 

강진 청자박물관 구입 유물(청자)을 감정,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J모 사단’ 대부 J모 씨는 30년 이상 국공립박물관의 문화재 구입 등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막강 실력자이다. 청자박물관 감정파문에 앙심을 품은 ‘J모 사단’에서 김종춘 죽이기에 나섰으며(이는 일부인사의 경찰 조사과정에서의 자백으로 확인됨), 이런 시간들의 흐름 속에서 2010년 9월 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에 의해 김종춘 소장 세계최고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진위논쟁에 휘말렸다. 특히 김종춘 회장 소장품으로 알려졌기에 더욱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해 12월 KBS 역사스페셜 증도가자의 진실은? 이란 특집방송을 통해 서체 분석(중첩도) 및 먹의 탄소연대측정 등을 통해 진품 가능성이 제기되자, 문화재계 실력자의 ‘상인 소장품 문화재 지정할 수 없어?’란 해괴한 발언 등으로 암운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렇듯 ‘증도가자’는 세력쟁탈전의 화염 속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 (자료3)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종합(다보성갤러리 제공)


우려한 대로 ‘증도가자’는 세상에 알려진 후 진·위와는 무관하게 세력들의 싸움질 속에 7년이 지난 2017년 4월 13일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 가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역사의 언덕에 묻어버렸다. 부결의 핵심 논거는 상인인 김종춘 소장품이기에 문화재로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화재가 소장자 때문에 묻힌 격이다. 그러면서도 해외반출에는 전전긍긍했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진 후(2010.9.1.), 부결에 이르기까지(2017.4.13.)의 문제점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공정성 상실 속에 진행되었으며, 절대적 증거능력(탄소연대, 과학감정결과)을 외면(유보)하고, 연구영역에 불과한 서체분석, 주조·조판실험에 근거한 추정(가설)논리에 근거하여 ‘가치 없다’라고 부결함으로서 증거법칙과 상식의 붕괴를 초래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1) 금속활자에 식견 없는 인사들 중심으로 지정조사단이 구성(반대를 위한 반대)되었으며, 2) 대형파동의 당사자인 국과수의 서체분석은 도리어 격한 반발을 초래하였고, 3) 당연히 종합토론 및 교차검증을 거쳤어야 할 주조·조판실험을 일방적으로 진행하였으며, 4) 8명의 심의위원 중 3명이 지정조사단원으로 구성됨으로 객관성·공정성 상실을 초래하였으며, 5) 심의위원들의 준비(식견) 부족 자탄 속에 감정기관 의견에 경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하여 북한, 중국 등을 의식해야 한다는 등의 황당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위조흔적 등 부결을 위한 아무런 증거 등을 찾지 못하자 급기야 진·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장자의 비협조와 출처 불명을 부결의 논리로 끌어들인 것이다. 유전과정이 합리적으로 소명되었음에도 말이다. 소장자는 진·위 규명에 협조하기 위해 검사과정에서 부주의로 활자를 5개나 파손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체 문제 삼지 않는 등, 인내한 것으로 보여 진다.

 

출처규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발굴유물이 아니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소장자로선 구입과정만 투명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고, (과정)추적 등은 관계당국의 소관사항(임무)인 것이다. 그러기에 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감정을 실시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다. 800년 전 유물에 대한 출처과정을 전부 밝히라는 관계당국의 요구는 불가능을 증명하라는 억지와 다름없다.

 

결국 관계당국의 불가능을 증명하라는 무리한 요구는 부결을 위한 핑계거리  찾기로 볼 수밖에 없다. 수차 소명(조사)한 소장경위를 앞세운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다. 소장자가 800년 전 유물에 대한 출처과정 등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왜 탄소연대측정을 하고 각종 과학감정을 진행한단 말인가.  

 

증도가자, 세력다툼에 휩싸인 문화재 업계의 난맥상 여지없이 드러내

증명불가능 부분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면서 문화재를 묻으려 해선 안 돼

 

소장경위 불명을 부결의 결정적 이유로 내세운 점에 대해 소장자인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의사인 김병구가 1995년부터 소장하고 있는 것을 진품소문을 듣고 2010년 구입한 것이 전부인데,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증명하란 말인가? 관계당국에서 이미 수차 확인하지 않았나? 사실 증도가자로 인해 생이 거의 파탄난 상황이다. 강진청자가격을 사실대로 말하는 바람에 J모 사단의 사주, 투서 등으로 7〜8년에 걸쳐 수 십 번 수사 받았으나 대부분 무죄판결을 받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독일대사가 3번이나 찾아와 팔라고 했으나 서지학자들이 세계최고의 활자라고 하여 팔지 않고 버티어 왔다. 어찌 보면 피눈물의 세월이었다. 그것이 가짜였다면 살벌한 수사과정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청자감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면서 격렬한 소회를 피력했다.

 

향후의 계획 등과 관련하여 김종춘 회장은, “증도가자 진·위규명은 정말 중대한 문제이다. 진품이라면 240여개 국가, 80억에 가까운 전 세계인들에게 문화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드높아 질 것인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왜 진실을 밝혀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일본에서 구입한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를 송·원대 활자로 둔갑시켜 세계유산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문화재업계 마피아 세력들은 담합하여 엄연한 진품인 ‘증도가자’를 가짜로 만들려 하다가 만들지 못해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 가치 없다’면서 내팽개쳤다. 고려금속활자가 어떻게 문화재가치가 없단 말인가.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면서 흥분했다.

 

그는 “증도가자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를 밝혀내는 일이 아닌가. 증도가자가 고려활자가 아닌 가짜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4차에 걸친 탄소연대측정결과 모두 고려시대이며, 수년에 걸친 과학감정결과 위조흔적 등이 전혀 없었지 않은가. 고려시대 소나무는 존재조차 하지 않아 위조를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세력들에 휘둘려 가치 없다고 내팽개친단 말인가. 신청활자가 가짜였다면 어떻게 밝혀지지 않았겠나? …증도가자를 소장한 이유 때문에 7〜8년에 걸쳐 온갖 음해성 수사를 받으면서 인생이 망가졌다. 상인이 갖고 있다하여 진·위와 가치가 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년 상반기 문화재 (재)신청을 마친 후 국가차원에서 재검증케 하여 서체분석, 주조·조판실험의 오류를 바로잡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다”면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소장자인 김종춘의 격정토로처럼 문화재(유물)의 진·위 및 가치가 소장자에 따라 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뜨거운 감자격인 고미술협회장인 김종춘이 소장하였다는 이유로 ‘문화재 가치 없다’면서 내팽개친 것은 사실이다. 이는 47쪽에 이르는 심의 속기록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증도가자의 운명을 결정한 그날(2017. 4. 13)의 심의(결정)과정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보였다. 진위를 밝혀내기 위한 진지한 토론은 오간데 없었고, 마치 김종춘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결론은 심의위원들이 ‘식견 없음’의 자탄 속에 부결의 모든 책임을 소장자에게 미루어 비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소장자가 해외에 반출하지 못하도록 ‘진품가능성’을 달아 족쇄를 채우자는 것이었다.     

 

▲ (자료4) 파손활자 상태[(5점. 갈 행(行), 원할 원(願), 부처 불(佛), 쑥 봉(蓬), 귀고리 충(珫)] 전면(조사 전/현 상태). 후면/측면(조사 전/ 현 상태) (사진제공= 다보성갤러리 )


이쯤 되면 위대한 문화재에 대한 일종의 테러이며, 가짜 만들기 공작의 음습함마저 풍겨 나온다. 출처불명 및 소장자의 비협조를 부결의 논리로 제시했으나 소장과정은 나름대로 소명했고, 초두, 수반 등은 구입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더하여 감정과정에서 (자료4)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유물(활자) 5점이  파괴(훼손)되었으나, 도리어 ‘상관없다’면서 관계당국을 안심시켰다. 더하여  보험가입 부담 및 이동의 번거로움 등을 피하기 위해 소장자가 직접 문화재연구소에 가져다주었다. 상황이 이러할 진데 도대체 무엇을 비협조 하였단 말인가?

 

위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관계당국(문화재청)은 국민들을 납득시킬만한 부결 논리를 찾지 못해 결국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진·위와는 상관없는 출처불명과 소장자 비협조를 앞세워 ‘문화재 가치 없다’면서 부결처분을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러한 결정은 소장자 및 오랜 기간 증도가자를 연구한 기초학술조사 연구팀의 격렬한 반반을 초래했고, 급기야 국회로 비화되어 ‘우선 제3자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질책을 받으면서 “‘서체(비교)분석’ ‘주조⋅조판’ 특위 등을 구성하여 재검증 하라”는 요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인류시원의 금속활자의 진위논쟁 과정에서 진지한 토론은   사라지고 ‘고미술협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금속활자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값이 뛰어 안 된다’는 희한한 기류 속에 북한,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출처불명 및 소장자의 비협조를 앞세워 (부결)결정했다. 세력다툼에 휩싸인 문화재 업계의 난맥상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문화재 진·위 및 가치가 소장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출토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은 어느 누구도 증명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면서 문화재를 묻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

 

▲ 심의속기록(보물 지정 시 북한 중국의 반응이 우려된다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는 속기록 47p)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