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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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1-07-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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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논란은 잘못된 전제…외면한 증거·망각한 역사들이 빚어낸 문화 참변
공지의 사실(수축률) 인정하고, 수많은 증거를 찾아내는 일에 노력함이 우선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관계당국의 조판실험은 일방적 실험에 불과…기초연구조차 없이 진실을 묻다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제25회(7.14)에서 신청활자의 주조 방법(실험)등과 관련, “수많은 주물사주조법들의 특징들이 분명하게 나타남에도 문화재청은 막연한 추정에 불과한 밀랍주조법을 마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포장하여 부결논리에 차용함으로서 관계자(소장자, 기초학술조사팀)들의 (강력)반발을 자초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신청활자의 (제작)특징들을 살펴보면, 연마흔적, 분할선(층), U자 및 V자형 주입구, 상하좌우 측면 및 모서리 부분 등의 층이 발견된다. 이는 밀랍주조법에서는 생겨날 수 없는 주물사주조법의 전형적인 특징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재청에서 주장하는 밀랍주조법은 최소한 아닌 것이다.
실제 밀랍주조법의 특징들은 보이지 않고, 주물사주조법의 갖가지 특징들(연마흔적, 분할선 등등)만 나타난다. 특히, 문화재청은 주물사주조법으로는 일부 활자들의 발췌가 어렵다고 설시했으나, 높이 겨우 0.3cm활자(부자)가 왜 빠져나오지 않겠는가? 특히, 진흙(모래)상태에서 말이다. 결국 문화재청의 밀랍주조법 주장은 부결을 위한 일방적 논리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인류 시원의 금속활자를 밝혀내는 주조실험은 새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조판실험 등은 진위와는 별개인 연구영역이다.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영역이기에 신청활자와 번각본의 조판관련 쟁점 및 실험의 문제점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조판과 관련, 관계당국(문화재청)은 증도가 활자와 번각본이 거의 같다는 전제하에 평균치를 추출하여 실험한 결과, 홈형의 경우 세로 평균치보다 그 크기가 작은 활자가 포함된 경우 조판이 가능하였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하였고, 홈-날개형의 경우 가장 작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가능했으나, 그 외 경우(평균 또는 최대)는 불가능하다고 설시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증도가 번각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신청활자는 38종 52개 활자이다. 이들 활자를 이용, 전체 9,344자 중 1,385자를 찍은 것이 확인되었다. 번각본에 사용된 활자 1,594종 중 2.4%내외의 글자 종(38)으로 15%내외(1,385자)의 글자를 찍은 것으로,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증도가 44장의 9,344자는 제1장〜제15장 앞·뒷면 3,273자, 제16∼제30장 앞·뒷면 3,249자, 제31∼제44장 앞·뒷면 2,824자(발문 74자 제외)이다. 즉, 앞·뒷면 한 장 평균 220자 내외(한 면당은 110자)이다. 그렇다면 한 면을 기준으로 평균 110자 내외의 글자 중에서 신청활자가 평균 12〜14번 찍힌 정도로서, 평균치는 12〜14%내외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균치를 추출해내느냐의 문제와 이렇게 추출해 낸 평균치가 과연 상식에 부합하느냐의 문제이다.
(자료2)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증도가 각장의 글씨들은 제 각각이며(굵기, 크기), 각 장(각 면)의 (세로)광곽크기 모두 다르다. 더하여 한판에 들어가는 글자들이 있기는커녕 겨우 한판(한 면)의 글자들 중 12〜14%의 활자들이 있을 뿐이다. 또한 글자들 크기들조차 제각각이다. 즉, 15%에도 모자라는 제 각각의 글자들로서 평균치를 추출(추정), 조판실험을 하여 가능성을 거론한다는 것은 우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실험을 위한 일방(가상)적 실험에 불과하다.
조판가능 여부를 증명할 자료의 확보 및 상식에 근거한 주장과,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빙을 위한 연구 등이 우선이지, 한 면 110자 내외 글씨 중 겨우 12〜14자 정도 사용된 글자를 기준으로 전체 면을 가상하여 조판가능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실체적 진실을 묻어버리자는 발상이다.
조판실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활자본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조판방법에 대한 관련기록 등이 없는 상황에서 주자본=활자본이라는 잘못된 전제하에 한판(한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존재하기는커녕 한 면에 겨우 12〜14%도 정도 사용된 제 각각의 글자를 (전체)기준으로 상정(가상)하여 일방적인 실험을 진행, 진실규명을 포기하였다는 의혹이다. 사실 조판방법조차 부착식(고착식)인지, 조립식(분리식)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편의적인 실험으로 일방적인 결론을 낸 것이다.
주자본=(목판)번각본은 희귀한 케이스. 번각본 5〜8% 수축은 공지의 사실
0.4〜2.9cm 광곽차이(주자본vs번각본) 문헌 수백 종…이들의 연구가 우선
문화재청은 주자본과 번각본의 차이가 거의 없는 ‘속명의록’을 예시하면서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조판실험을 진행시켰다. 더하여 주자본과 (목판)번각본의 광곽차이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검증)조차 없이 ‘평균크기 또는 최대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하다’면서 실체적 진실을 묻어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자본과 번각(목판)본은 통상 5〜8% 차이(번각본 수축)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각종 문헌 등으로 입증된 공지의 사실이다. 이미 지난 10회(3.24) 기사에서 ‘조판불가능’, 잘못된 전제(주자본=번각본)에서 출발된 부정확한 결론이라고 지적, 5〜8% 수축률 차이(번각본)를 보이는 각종 사료(문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자료3)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목재는 세포벽에 포함된 수분에 따라 팽창 혹은 수축이 발생한다. 목재의 수축률을 측정한 기존의 연구자료(1976-2015. ‘목재 수축률 측정에 대한 총설 ’등) 등을 살펴보면, 국내산 잣나무, 낙엽송, 굴참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삼나무 등의 수축률은 접선방향 4.21%-12.77%, 방사방향 2.09%-4.98%, 섬유방향 수축률은 0.14%-1.69% 등으로 나타났다(목판에서 방사방향은 판의 세로, 섬유방향은 가로, 접선방향은 판의 두께에 해당한다. 물론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목재)수축이 가로보다 세로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쨌든 가로에 비해 세로가 유의미한 수축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함수(수축)율로 통칭하고, 세로방향으로 평균 5〜8%정도 수축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그간의 목재 연구가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는 약간의 편차가 있을지언정 모든 목재에서 공히 나타나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증도가 번각본=활자본이란 잘못된 전제로 내세워 진실을 왜곡했다.
실제 오랜 기간의 연구결과로 정립된 공지의 사실인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세로방향으로 평균 5〜8%정도 수축되는 현상은 목재를 재료로 사용한 서책(목판번각본)에서도 수없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주자본과 (목판)번각본이 동시에 현전하는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 등을 통해 저본인 주자·목판본과 번각·(재)번각본의 (세로)광곽차이(수축률)을 살펴보면 (주자·목판본vs 번각본의 세로 수축률. 단위:cm)
△진서산독서기을집상대학연의(초주갑인혼입보자본vs번각본 : 0.9) △대방광불화엄경소(목판본vs복판번각본 : 0.8) △역학계몽요해(목판본vs목판번각본 : 1.7) △천지명양수륙잡문(인경목활자본vs번각본 : 0.8) △언해태산집요(내의원자본vs번각본 : 0.5) △논어집주대전(명나라 영락판vs영락판 번각본 : 2.3) △항례합편(정리자본vs번각본 : 0.9) △유중외대소신서윤음(정유자본vs번각본 : 0.4) △유호남민인등윤음(정유자본vs번각본 : 0.2) △묘법연화경(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1.2) △금강반야바라밀다경(정축자본vs번각본 : 2.5)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을해자본s번각본 : 1.3) △춘추좌씨전(정유자본vs번각본 : 0.7) △근사록(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2.2) △예기천견록(계미자번각본vs재번각본 : 1.5) △음주전문춘추괄례시말좌전구독직해(계미자번각본vs재번각본 : 1.3) △신간류편역거삼장고부(경자자본vs번각본 : 1.5) △문공주선생감흥시(경자자본vs번각본 : 0.5) △장자권재구의(경자자본vs번각본 : 0.7) △석보상설(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0.8. 일부 기록은 0.1 등)을 비롯하여 △주문공교창려선생집(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2.9) △주문공교창려선생집(훈련도감자본vs번각본 : 1.6) △신간교정왕상원집주분류동파선생시(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1.2) △당류선생집(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0.9) △경국대전(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0.6) △문선(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2.3) △향산삼체법(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0.6) △분류보주이태백시(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0.6) △구해남화진경(초주갑인혼입보자본vs번각본 : 2.4) △정선당송천가련주시격(초주갑인자본vs번각본 : 2.2) △불정심다라니경(을해자본vs번각본 : 1.4) △문공가례의절(을해자본vs번각본 : 2.2), 국조유선록(을해자본vs번각본 : 0.9) △삼략직해(을해자본vs번각본 : 1.1), 주자증손여씨향약(을해자본vs번각본 : 1.1) △고금역대표제주석십구사략통고(을해자본vs번각본 : 1) △표제구해공자가어(을해자본vs번각본 : 1.5) △자치통감강목(병진자본vs번각본 : 2.8) △상설고문진보대전(경오자본vs번각본 : 1.3) △신동국여지승람(계축자본vs번각본 : 0,8) △주자어류(병자자본vs번각본 : 1.5) 등, 수백 종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수많은 사료(문헌)들을 통해 주자본과 (재)번각본들이 0.2〜2.9cm의 (세로)광곽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주자본=(목판)번각본 현상은 거의 없는 희귀한 케이스에 해당될 정도이다. 이런 자료(문헌)들은 (서지)학회 등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수백 종 이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우선인 것이다.
그럼에도 주자본과 번각본 차이가 미세한(0.3cm) ‘속명의록’과, 특히 통상적 광곽차이(0.9〜2.2cm)에 휠 씬 못 미치는 수축률(0.1 또는 0.8cm)의 ‘석보상절’의 광곽변화 예측치 비교를 통한 (예상)변화를 추정하여 조판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가상논리이다. 어쨌든 주자본=번각본은 전무하고, 통상보다 작은 0.1〜0.8cm 광곽(예상)변화율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실체적 진실왜곡이라 할 것이다.
조판논란은 잘못된 전제…외면한 증거·망각한 역사들이 빚어낸 문화 참변
공지의 사실(수축률) 인정하고, 수많은 증거를 찾아내는 일에 노력함이 우선
살펴본 바와 같이, 관계당국(문화재청)은 활자본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조판방법에 대한 관련기록 등이 없는 상황에서 ‘주자본=활자본’이라는 잘못된 전제하에, 한판(한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존재하기는커녕 한 면에 겨우 12〜14%도 정도 사용된 제각각의 글자를 (전체)기준으로 상정하여 일방적인 실험을 진행하였고, 더하여 세로방향으로 평균 5〜8%정도 수축현상을 보이고 있는 공지의 사실조차 외면하면서 평균치로 조판이 되지 않는다고 일방적인 결론을 내렸다.
특히, 통상적 광곽차이(0.9〜2.2cm)를 보이는 문헌들을 외면하고 수축률이 작은(0. 1 또는 0.8cm) ‘석보상절’의 광곽변화 예측치 비교를 통한 (예상)변화를 추정하여 (같은)변화 수치로는 조판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이는 실체적 진실과는 동떨어진 잘못된 가상 논리라고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진실 왜곡 상황인 것이다.
열거한 바와 같이, 주자본과 번각본이 통상적으로 0.4〜2.9cm의 (세로)광곽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문헌으로 입증된다. 도리어 ‘주자본=번각본’은 매우 희귀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이다. 실제 고려·조선시대의 수많은 사료(문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주자 본에 비해 번각·재번각본이 세로로 5〜8% 정도 수축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점은 누구나 인정해야하는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비교하려면 평균치인 1.5〜1.8cm 정도의 수축률을 고려해야 함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런 공지의 사실조차 외면, ‘증도가 번각본이 활자에 비해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등 ‘활자본=번각본’이라는 잘못된 전제와, 최소치인 ‘석보상절’의 광곽변화 예측비율과 같은 비율로 변환되어진다는 가공논리를 앞세워 평균크기 또는 최대크기 활자로는 조판되지 않는다(홈형, 홈-날개형)라고 설시했다.
이쯤 되면 진실왜곡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전하는 번각본 4종(삼성본, 공인본, 반야사본, 대구본)은 1239년 발간된 (번각)초쇄본이 아니라, 그로부터 1〜2세기 이후 발간된 재번각본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활자본 광곽은 현전하는 재번각본들보다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더하여 번각초쇄본(1239년) 역시 현전하는 4종의 재번각본들보다 어느 정도 광곽이 클 것(0.4〜0.5cm)이란 점 또한 자명하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상황이 이러하다면 조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번각본=수축’이라는 공지의 사실마저 무시하고, 특히 납득할 수 없는 기준(석보상설 등) 및 실험 등을 근거로 조판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는 가공논리에 불과하다.
사실 이러한 논란 등에 앞서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점은 주조·조판실험은 진위와는 관계없는 연구영역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연구영역인 주조·조판실험 등을 마치 과학인 것처럼 포장함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선조들이 어떻게 주조하였고, 조판하였는지에 대한 당시의 기록은 전무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선조들의 슬기로 주조하였고, 조판하여 책자로 발간했다. 주조기법은 1504년(연산군 1년) 저술된 성현의 용재총화에 처음 기록되어 있고(주물사주조법), 조판은 신숙주 등이 편찬한 국조보감에 세종이 이찬에게 명하여 “(활자)판을 만들고 주자를 다시 부어 만듦으로서 활자가 모두 바르고 견고하였다…”란 기록 등에서 조판기술 발전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현전하는 ‘증도가’는 번각본임으로 조판틀(조립식, 고착식)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접착물(밀랍) 흔적 등은 없고, 더하여 비스듬하게 식자되거나 크기가 평면적으로 고르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보아 조판을 위해 상당히 고심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으로 오늘날의 편의적 기준과 일방적 실험으로 조판가능성을 진단할 것이 아니라 당시 (조판)상황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관련 문헌(증거)들을 최대한 찾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올바른 자세인 것이다. 사실 수많은 증거(문헌)들은 널려 있는 상황이다. 이를 외면함은 진실을 묻어버리자는 것과 진배없다.
그럼에도 관계당국은 1)‘증도가 번각본이 활자본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여 번각본의 광곽수축률(5〜8%)을 보이는 수많은 증거(사료)들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평균 광곽 변화율(0.9〜2.2cm)보다 휠 씬 작은 ‘석보상설’과 ‘속명의록’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실험의 의도성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으며(주자본과 번각본의 수축현상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신정엽은 석보상설 주자본과 번각본 광곽차이를 0.1로 게재), 3)현전하는 4종의 번각본들이 번각초쇄본(1239년)이 아니라 이로부터 1〜2세기 이후에 제작되었기에, 활자본은 현재의 재번각본보다 광곽이 상당이 클 것임은 당연함에도, 이런 역사적 사실조차 무시하고 평균수치로 실험을 진행하여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하다고 설시했다.
결국 관계당국은 잘못된 전제(주자본=번각본), 외면한 증거(광곽수축률을 보이는 수많은 문헌들), 망각한 역사적 사실(현전 4종 번각본은 1239년의 번각초쇄본보다 1〜2세기 이후의 재번각본들)들이 빚어낸 조판실험을 주요 근거로 ‘문화재 가치 없다’라고 설시하면서 역사의 언덕에 묻으려 하였다. 특히, 심의위원(지정조사단) 일부는 조판문제를 고리로 부결을 주도했다(속기록 39p).
살펴본 바와 같이, 관계당국(지정조사단)이 진행한 조판실험은 잘못된 전제, 외면한 증거, 망각한 (역사적)사실들이 빚어낸 문화 참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거듭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선 번각본=주자본이라는 사실은 진실과는 동떨어진 잘못된 전제에 불과하고, 특히 통상 0.4〜2.9cm의 (세로)광곽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증거(문헌)들이 널려 있음에도 이를 찾으려는 노력은커녕 의도적으로 외면했고(주자본과 번각본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수백 종 이상의 문헌으로 증명 가능), 더하여 최소변화치인 석보상설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부결을 위한 의도적인 실험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활자본에서 (목판)번각본이 상당히 수축되고, 번각본에서 재번각본은 또다시 수축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자 본에 비해 (목판)번각본이 통상 5〜8%정도 수축된다는 공지의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를 증명하는 널려 있는 수많은 문헌들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하여 활자본→ (목판)번각본→ 재번각본을 거치면서 더욱 수축된다는 (역사적)사실을 올바르게 직시한다면 조판이 되지 않는다는 논란자체가 생겨 날수가 없다. 주자본 대비 통상 5〜8%정도 수축되어진 (목판)번각본의 증거들이 수없이 널려 있는데, 어떻게 이를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이 이러할 진데 모든 증거(문헌)들을 묻으면서 어떻게 조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모든 점들을 고려한다면 조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지의 사실들을 인정하고, 수많은 증거를 찾아내는 일에 노력함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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