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2)
페이지 정보
- 조회수3,384
- 작성일21-06-18 11:44
페이지 정보
- 조회수3,384
- 작성일21-06-18 11:44
본문
분석기관의 신뢰성, 분석과정의 적절성 등은 스스로 인정하면서 수용유보?
탄소연대 수용유보는 증거법칙 및 명확성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이변적 사태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먹의 위조는 불가능(고려시대 소나무 없음)하고, 시료의 오염 가능성 없음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란 연재를 통해 증도가자에 대한 탄소연대 및 과학감정결과 등은 절대적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문서로서, 이를 배제(유보)하고 추정(가설)에 불과한 서체비교, 주조·조판실험 결과로 ‘(문화재)가치 없다’면서 부결함은 진실왜곡임을 지적했다.
진·위 논쟁의 전반적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결과, 1)금속활자에 식견 없는 인사들 중심으로 지정조사단이 구성(반대를 위한 반대?), 2)대형파동의 당사자(제척대상)인 국과수의 서체분석은 도리어 격한 반발을 초래 3)당연히 종합토론 및 교차검증을 거쳤어야 할 주조·조판실험이 일방적으로 진행 4)특히, 8명의 심의위원 중 3명이 지정조사단원으로 구성되는 등 공정성을 상실 5)심의위원들의 ‘식견부족’ 자인 속에 감정기관 의견에 경도되었으며, 더하여 ‘북한, 중국을 의식해야한다’는 식의 어이없는 주장을 펼쳤으며, 6)출처(유전)과정이 나름대로 소명되었음에도 소장자 비협조를 앞세웠다.
인류의 활자(인쇄역사)를 재정립할 증도가자 진위를 더욱 심층적으로 해부하여 이를 증명하고자 우선 탄소연대 관련 쟁점부터 짚어본다.
인류역사는 문자 역사로서, 태초에 인간들이 말을 하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한 문자가 탄생했다. 태초의 문자는 상형문자로 짐작된다. 이집트의 석문(성각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인도의 패엽경, 중국(은나라)의 갑골문자가 그 기원이다.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시대의 ‘8조 법금’ 존재로 문자사용이 추정된다.
문자를 제작·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필기재료와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략 청동기 시대(BC 4000년경〜 )부터 돌, 파피루스, 야자수 잎, 짐승 가죽 등의 필기재료에 끌, 갈대 펜 등의 필기도구를 사용했다. 이후 붓, 먹, 종이 등이 발명되어 문자의 제작 및 전달이 본격화되었고, 이는 인쇄와 출판으로 이어졌다.
문자사용을 위한 필수 재료 및 도구들 중, 붓은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묵서도편(墨書陶片)’으로 은(殷)나라 시대에 이미 붓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종이와 먹은 후한의 환관 채륜(蔡倫)이 AD105년경 종이를 발명(일명 ‘채후지蔡侯紙’)했고, 그 즈음에 먹도 발명되었다고 전해졌으나, BC180〜142년(전한시대)의 종이 등도 발견되어 먹과 종이는 이미 이 즈음 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발명된 먹과 종이는 삼국시대 초기 한반도에 전래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삼국시대 초기부터 먹과 종이 등이 전래되어 많은 서적이나 불경 등을 저술하거나 필사했을 것은 분명하나, 현전하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의 판비량론(671년. 일본 오리타 대학) 및 대방광불화엄경(754년. 국보 제196호. 리움미술관),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이전. 국보 제126호) 등에 불과하다.
특히, 먹은 송연묵과 유연묵으로 대별되는데, 고려말기까지는 송연묵만 제작됐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이전의 먹으로는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는 신라양가상묵(新羅楊家上墨),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이란 신라 먹 15점(700년대 추정) 및 1998년에 발견된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 1점뿐이다.
신라〜고려시대 먹의 존재가 이러하고, 특히 1〜4차에 걸친 탄소연대측정 결과 모두 1200년 전후의 고려시대나 이전시대임이 밝혀졌음에도 관계당국은 먹의 위조(현대서 제작?)까지 거론했다.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고려 말 까지는 송연묵만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현재 존재하는 소나무의 최고수령은 600여년에 불과하고, 400년 이상 된 소나무들은 보호수나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되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800〜1000년 된 고려시대 소나무는 존재하지도 않고 400년 이상 된 소나무는 모두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고려시대 소나무를 구해 먹을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럼에도 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현재도 의도적으로 만든다면 그 연대를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속기록 29p)…”라고 강변까지 했다. 고려시대 소나무가 존재조차 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려시대 먹을 만들어 붙인단 말인가? 문화재연구소가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왜 이토록 몸부림쳐야 했단 말인가.
분석기관의 신뢰성 및 분석과정의 적절성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 및 Paleo Labo 社 등 신청 활자의 연대측정에 참여한 해당 분석 기관들은 연대측정 분야에서 국내외의 대표적 기관들로서 다수의 과학적 성과와 다양한 유물에 대한 연대측정의 성과를 보유하고 있음. 또한, 이들 분석 기관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표준 시료를 이용한 검정 절차를 통해 분석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개괄적으로 인정됨. 특히, 2014년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실시한 4차 분석의 경우, 먹의 채취가 가능했던 20개 활자선정과 이로부터의 먹의 채취와 분석 과정 전반에 대해 명확히 기술되어 있으며, 또한 표준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었다고 판단됨”이라고 하는 등, 관계당국 스스로 인정하면서 보도문에 설시했다.
연대측정은 위 3개 기관에서 4차(2010〜2014)에 걸쳐 진행됐다. 다보성갤러리 소장 59점과 청주고인쇄박물관 3점 등 62점을 상대로 먹 채취가 불가능한 34점(다보성31점, 고인쇄박물관3점) 및 시료량이 적어 분석 불가능한 6점을 제외한 22점에 대해 4차에 걸쳐 측정하였으며, 福, 我, 廣은 1,2차 중복 측정했다.
연대측정을 위해 가속기 질량분석법(AMS)이 동원되었으며, 오염방지 및 정확한 측정을 위해 표면에 노출되지 않은 진흙 속에 묻어 있는 먹을 선택함으로 오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시켰다. 그럼으로 먹의 오염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채취된 먹 중 일부를 원소분석기로 분석하여 먹의 탄소 함유량을 측정하였다.
우선 시료로부터 탄소를 추출하여 흑연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환원 처리해 놓은 철(Fe)분말이 들어 있는 튜브로 옮겼으며,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분은 반응을 방해함으로 냉각트랩을 이용하여 포집했다. 만들어진 흑연은 철가루와 함께 눌러 펠렛 형태로 제작하였다. 이렇게 제작된 흑연 펠렛을 가속기 질량분석기에 창작하여 방사성탄소의 비율을 측정했고, 측정된 시료의 방사성 탄소 비율과, 함께 측정한 표준시료를 이용하여 얻은 초기치를 이용하여 연대계산식으로 시료의 탄소연대(BP)를 계산했다. 이후 탄소연대를 달력연대(year)로 환산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특히, 진흙 속의 먹을 사용하였고, 오염가능성이 있는 시료나 먹 시료량이 적어 분석 불가능한 활자들은 배제하는 등, 오염가능성 원천차단은 특기할 만한 사안이다.
분석기관의 신뢰성, 분석과정의 적절성 등은 스스로 인정하면서 수용유보?
탄소연대 수용유보는 증거법칙 및 명확성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이변적 사태
살펴본 바와 같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과 관련하여 관계당국(문화재청)은 시료인 먹의 위조여부까지 거론하였으나, 고려시대는 송연묵이 존재하였을 뿐이었고, 현존하는 소나무의 최고수령은 600여년에 불과하고, 더욱이 400년 이상 된 소나무들은 보호수나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되어 엄격히 관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시대 소나무를 구해 먹을 만든다는 것은 완전한 억지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시료의 오염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으나, 오염을 방지하면서 정확한 측정을 위해 표면에 노출되지 않은 진흙 속에 묻어 있는 먹을 선택함으로 오염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시켰다. 그러므로 오염가능성은 비약적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특히, 분석기관의 신뢰성, 분석과정의 적절성 등은 관계당국이 스스로 인정하는 상황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 Paleo Labo 社의 22개 시료에서 채취한 4차에 걸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의 결과는 상한은 11세기 초, 하한 13세기 초, 중간 값은 12세기 초로 나타났다(고려시대 또는 이전).
이와 관련 자료3)과 같은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이 측정결과들이 시료에서 채취한 먹을 이용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대가 활자들의 제작연대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아니며. 엄밀히 말하면 먹의 재료가 된 유기물, 즉 나무의 생존이 멈춘 시기를 타나내는 것이다. 생물의 생존 중에는 외부와 호흡 및 식생을 통해 탄소의 호흡이 이루어진다…이 탄소연대가 지시하는 연대는 먹의 재료로 사용된 식물의 고사시점을 의미할 확률이 가장 높다…”(2011. 6. ‘증도가자’에 잔류된 먹의 탄소연대 분석 논문 중에서. 홍완, 박중언, 성기석, 박규준. ‘증도가자’ 학술발표 논집 81p)
“…나무의 생장은 최외각에서만 이루어지며 내부 연륜은 나무가 생장하고 있는 동안에도 탄소의 유입이 없으므로 그 연륜이 생성된 시기를 지시한다. 다시 말해서, 나무 내부의 탄소연대는 나무의 고사시기와 관계없이 그 연륜이 생성된 연도를 나타낸다. 이러한 효과를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서는 ‘Old wood effect’라 부른다. ‘Old wood effect’가 나타날 때는 가장 젊게 나타난 연대를 신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란 부분이 주목된다. (위 학술발표 논집 81p)
이는 수령이 높은 경우 고사시기와 관계없이 내부연륜이 생성된 시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일부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관계당국은 산포가 큰 분석 결과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해당 연대 구간에 속하지 않은 분석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등에 의구심을 표명했으나 위 논문으로 이런 의구심은 완전히 풀려진다. 즉, 내부의 탄소연대는 고사시기와 관계없이 연륜이 생성된다는 것으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은 오래전에 이미 연륜이 생성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일부 고려시대 이전이 나타난 것이다.
탄소연대측정의 결과는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3항에 규정된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로서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립되어온 절대적 증거법칙(원리)이다. 그러므로 이런 증거들을 배척하기 위해서는 명백한 반증이 제시되어야 하고, 가설과 추정 등은 엄격히 배격된다.
그럼에도 관계당국은 확인되지 않은 시료의 오염가능성을 가정하거나, 시료의 수 및 먹의 진위, 활자연대의 일치성 등을 거론하면서 결과수용을 유보했다. 가설과 막연한 추정 등이 절대적 증거능력을 뒤집은 것이다. 관계당국 스스로 분석기관에 신뢰성을 보내고 분석과정의 적절성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먼저 시료의 신뢰성 및 오염가능성 등과 관련, 오염방지 및 정확한 측정을 위해 표면에 노출되지 않은 진흙 속에 묻어 있는 먹을 선택함으로 오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시켰기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 상황이다. 그러므로 오염가능성 등은 더욱 염려할 상황은 아니다. 또한 22개 활자에서 먹을 채취하여 3개 기관에서 분석하였기에 시료수량은 충분한 상황이었다(3개 활자는 1, 2차 교차측정까지 마침).
더하여 관계당국은 신청활자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의 경로를 확인하지 못하여, 먹의 진위 또는 위조에 대한 단정적 언급을 할 수 없고, 먹의 성분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려시대 먹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신청활자가 세상에 드러난 후 최초 소장자인 다다가 사명하였기에 그 이전의 상황은 누구도 알지 못하나, 고려시대 먹으로 판명된 상태에서 위조를 거론함은 가당치 않으며(고려시대 소나무가 현존하지 않아 먹 위조는 원천불능 상황임), 또한 고려시대 먹의 성분분석 데이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성분분석을 거론함은 부결을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할 뿐이다.
나아가 먹의 연대와 활자의 연대 사이의 괴리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먹의 시대성 분석이 수반되지 않아 먹의 연대와 활자 연대의 일치성에는 의문이 있다고 하였으나, 통상 먹을 제작해 두었다가 이후 활자를 제작, 찍기 때문에 먹과 활자 연대가 약간 차이날 수 있다는 것은 도리어 당연한 이치다. 더하여 먹의 시대성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조차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를 거론함은 부결을 위한 가공 논리에 불과하다.
솔직히 현존하는 고려시대 송연묵 재료인 소나무는 물론 더더욱 유연묵 원료인 고려시대의 식물조차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 당시(고려시대) 먹의 재료를 구해 제작한 후 활자에 붙였다는 식의 가공논리는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억지논리와 다름없다. 누가 어떻게 보호수,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나무를 베어 먹을 만든다 말인가? 더욱이 고려시대 소나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또한 시료의 신뢰성, 시료의 오염가능성, 시료의 수 및 분석 조건 등에 대해 갖가지 가정과 추정 등을 앞세워 결과수용을 유보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나, 그야말로 모두 막연한 가정과 추정에 불과할 뿐이고, 어느 하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과 추정이 절대적 증거능력(탄소연대측정결과)을 완전히 뒤엎은 것임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객관적·절대적 증거능력들이 갖가지 가공논리와 추정에 의해 모두 뒤집어지는 것이다. 순리(조리)와 경험칙에 반한다.
그간 탄소연대측정을 위해 3개 기관에서 4차에 걸쳐 먹의 채취가 가능한 22개 활자에서 모두 먹을 채취하여 사용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먹을 채취하여 재측정 할 상황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과를 인정함이 마땅하다. 객관적 증거도 전혀 없는 갖가지 추정 및 가공논리를 앞세워 이를 유보(외면)함은 오랜 세월을 거쳐 정립되어온 ‘증거법칙’ 및 ‘명확성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이변적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 규명 문제는 인류의 금속활자 시원을 밝혀내는 세계사적 문제로서 이대로 어물쩍 묻을 상황은 절대 아니다. 문화국위를 세계만방에 드높일 수 있는 이 문제가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는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증거능력이 있는 탄소연대측정 및 과학감정결과 등을 인정하면서, 연구영역인 서체·주조·조판분야 특별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신청활자 38종 52개자로 찍은 번각본 1,385자와의 유사도, 중첩도 등을 집중분석하고, 밀랍·주물사 주조공법을 진행하여 그 특징들을 세밀히 살펴보면서, 학회 등의 협조를 받아 수백 종에 이르는 주자본과 (목각)번각본의 광곽차이를 밝혀내어 증명는 방법으로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의 진실을 (재)규명하여야 한다. (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관련링크
- http://www.mhj21.com/143809 1968회 연결
- 이전글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3) 21.06.23
- 다음글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1) 21.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