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21, 2021.03.08) ‘증도가자’심의 속기록을 통해서 본 갈팡질팡 문화재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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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1-03-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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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위원 8명중 3명은 지정조사단 멤버…객관(공정)성 상실 아닌가
2017년 4월 13일(목)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위원장 신승운)는 7년 동안 검증·재검증을 거치면서 논란을 거듭해 온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을 (심의)부결했다. 속기록을 통해 본 그날의 회의 결론은 본질(진위)보다는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해외반출을 시켜서는 (절대)안 된다. 소장자에게 책임을 미뤄야 한다”면서 부결 의결 했다. 소장처가 상인인 다보성갤러리(회장 김종춘)여서 안 된다는 것이다. 진실규명을 외면한 갈팡질팡 상황(심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술과 역량부족을 자탄…동산문화재분화위원회의 (부결)결론은 타당한가
그날(2017. 4. 13) 회의(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는 신승운 위원장 등 8명의 위원들이 참석하여 10:00경 개회되어 ‘최석정 초상 및 함’ 등 5건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에 대한 원안가결(보물지정) 및 1건의 현상변경(세계기록유산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보존처리 현상변경에 대한 조건부 가결(자문회의 구성)안을 통화시킨 후 10분간의 정회를 거쳐 10시 55분부터 증도가자(고려금속활자)지정 심의가 시작되어 13시 50분까지 계속되었다. 15시 발표를 앞두고 진위보다는 소장자의 비협조 등을 내세워 시급히 부결결정을 한 것이다.
10시 55분부터 시작된 증도가자(고려금속활자) 문화재 지정 심의 안건은 간사(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의 경과보고로 시작되었다. 약 30여 분간 진행된 경과보고(속기록14〜24p)의 주요 내용은 당일 오후에 발표한 ‘증도가자(고려금속활자) 보물 지정 신청에 대한 문화재위원회 검토 결과 (부결)발표문’과 대동소이하다. [“1)과학 분석의 결과 ‘접합이나 가공 흔적 없고’, 활자표면에 덧칠이나 유기물 흔적 발견할 수 없었다. 2)방사성탄소연대측정의 국내외 전문3개 기관의 측정결과 값(11〜13세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먹과 활자의 연대 상관성에 대한 불명확성 해소 등이 필요하고, 3)서체 비교분석 결과 유사도 등에 있어 비교활자인 임진자 등에 떨어지고, 4)주조방법으로 신청활자의 일부가 사형주조법으로 빼내기 어려운 활자의 존재 등으로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5)조판검증 결과 신청활자로서 서울 본 증도가를 조판에서 간행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6)취득경위 등이 소명되지 않는다”]는 등의 취지였다.
이렇게 간사로부터 경과보고를 청취한 후 위원들의 토의가 시작되었고, 검증기관(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지정조사단, 전문위원) 관계자들이 위원들의 질의에 응답하기 위해 대기(참석)했다. 검증기관 관계자들의 진술(증언)이 가부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료2)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위원)...저는 심판의 전문가로서 앞에 진위여부에 관해서는 도리어 진품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요. 그런데 두 번째 부분은 이것은 신청자 자체가 협조하지 않은 것을 위원회가 잘 모르면서 판단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나하는 의문이 생깁니다...(속기록 27p)” 등, 소장자의 비협조를 전제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자료3)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위원)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의 가정이지 지금 거기에 대한 원래 붙어 있던 것으로 보는 것으로 원칙이지 그것이 감정에 나왔는데 그것을 사후에 붙였을지도 모르니까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판단이 아니고 그것 그 물건을 의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람의 의견일 뿐이지 일단 과학자는 판단을 하여 나오면 특단의 사정이 없으면 그것은 과학적 판단을 믿는 것이 옳은 것 같아요. 왜냐면 부식상태나 이런 것도 누군가 과학적으로 얼마든 옛날에 부식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이론상 가능한데 이럴 가능성, 저럴 가능성 이런 것들이 있다면 우리가 지금 진품으로 감정한 것도 전부 의심을 해서 결국 진품감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니까 특단의 사정이 있으면, 그것을 사후에 붙였다고 의심이 되는 이런 의심이 있었고 또 부식도 인위적으로 했을만한 이런 것이 있었다고 하는 이런 것이 없다면 그 과학적 결과는 믿는 것이 옳지 않나요(속기록 29p)” 등,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의 ‘먹의 연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사후 붙임)’는 취지의 주장 등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더하여 자료4)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위원) 지금 우리가 논의를 하면서 임진자처럼 고려활자, 신청이 된 대상이 한꺼번에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하고 있는데 고려시대의 금속활자가 일찍 세계최초로 만들어지면서 그것이 한 번이 아닌 몇 번에 걸쳐서 계속해서 작은 것도 만들고 큰 것도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잖아요. 또 그게 출토가 같이 쓰고 사용도 같이 했을 수도 있는 가능성도 있죠? 그러니까 그런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상황에서 그게 조금 크고, 작다. 이 글자와 저 글자가 다르다하는 이것이 중요한 과학적인 판단을 뒤집을 상황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이 들고요....(속기록31p). 더하여 자료5)에서의 “(위원)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상당히 이제 제대로 만들어져서 기술이 축적이 된 때이고요. 지금 고려시대의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냐, 아니냐하는 것으로 처음 시대해볼 때의 기술이 임진자 때와 비슷하리라고는 생각하면 더군다나 말이 안 되고요.
(위원) 그것 기술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위원) 알아요. 그것 모르는 것이 아니라요. 뭐냐면 우리도 무슨 글자를 쓴다고 해도 상당히 글자가 숙달될 때 그분의 필체하고 처음 초등학교 글자를 배울 때 글자를 비교해가지고 안 되듯이 우리 고려시대 초기에 처음 금속활자를 만들 때 그 고려 활자공들의 실력에 비춰서 그 일관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요(속기록 34p)”라고 하는 등, (재)검증 과정 및 결과의 문제점 등을 짚어나가기도 했다.
사실 그날(2017. 4. 13) 회의(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에 출석한 검증기관(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지정조사단, 전문위원)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신청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과학 분석 부정의 논리제공’ 및 ‘고려 기술이 조선 기술보다 낮지 않다’ 등등 안간힘을 다한 것으로 보여 지며, 이런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은 14〜60쪽에 이르는 방대한 속기록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검증기관 관계자들을 퇴장시킨 후, “.... 상기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청활자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 보다는 검증방법이 더 개발되고 발전될 까지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됨(속기록 38p)”이란 지정조사단의 의견서를 열람한 후, 긴장감 속에 결론(가부)도출 과정에 돌입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료6)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고려활자로 지정하면 중국과 북한이 문제를 삼아 복잡하여 진다’면서, 소장자가 비협조를 이유로 기각(부결)을 시키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 고려금속일 가능성은 달아 놓고...(속기록 47p)”라면서 소장자에게 책임을 미루기로 한다.
더하여 자료 7)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위원)...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이 이것을 그냥 딱 결정해 버릴 수 있는 그럴만한 역량과 이런 것들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속기록55p)”라고 자탄하기도 한다.
심의위원 8명중 3명은 지정조사단 멤버…객관(공정)성 상실 아닌가
중립적 심사위원회 및 각종 (재)검증특위를 구성해 진실 규명에 나서야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 9월 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에 의해 출발된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규명은 검증(기초학술조사단)·재검증(지정조사단) 등을 거쳐 2017년 4월 13일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에 부의되었다. 그날 회의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이 이것을 그냥 딱 결정해 버릴 수 있는 그럴만한 역량과 이런 것들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속기록55p)?”란 자탄처럼 사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한 위원들의 주관 하에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검증기관 관계자들의 과학감정까지 무시하는 부정적 의견표출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시간에 쫓긴 나머지 북한관계 및 소장자의 비협조 등을 이유로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 없다’면서 (지정)부결을 의결했다. 솔직히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어리둥절한 결정이다.
그날 결론(부결)에 이르는 과정은 한편의 서글픈 코미디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위원)시간적으로 보아 일단 부결인 것 같고 부결 문구를 만들자고요(속기록 58p).... (위원) 저는 당황스러운 것이 많은 위원들이 유보가 나올지 알았는데 전부 부결로 나와 반가운 일입니다. 그만큼 그기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이야기이니까 여기서 유보로 가는 것은 아니고 부결로 가는 것이 맞고요(속기록 59p)... (위원)그러면 설명할 때 위원들 중에는 진품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신청인이 스스로 그러는데 어떻게 하느냐하며 그래서 의견이 다 모아졌다고 이러면 되죠(속기록 59p)”라고 하는 등, 강경파 주도(?)로 무조건적인 부결로 내몰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문구정리가 시작되면서 자료8)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위원)...소장경위는 설명하면 할수록 점점 꼬여서 영원히 해 줄 수가 없죠(속기록 60p)” 처럼 소장자를 핑계로 부결을 의결했다. 그날 175분의 드라마는 이렇게 끝났고, 회의 종료 후 1시간만인 15:00경 간사(유형문화재과장)는 부결을 발표했다. 7년간에 걸친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일단 이렇게 1차 막을 내린 것이다.
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 분석 등 절대적 증명력 등을 갖가지 추정논리로 뒤엎으면서 소장자의 비협조를 핑계로 부결을 발표하면서 만세를 부른 듯한 모습이었다.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발견 등으로 문화국위 선양이 고양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를 이렇게 졸속처리해도 되는지 정말 생각해 볼 문제다.
2017년 4월 13일의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의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문화재 지정 (부결)심의 및 직후 발표된 문화재청의 (부결)발표문은 논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기초학술조사팀 및 소장자는 같은 달 17일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문화재청의 (부결)결정을 조목조목 반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장자는 근거 없이 고려금속활자의 문화재 (지정)부결을 주도한 ‘문화재마피아’조직의 척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국회로 비화되어 ‘어떻게든 문화재 지정을 하지 않으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는 질책을 받으면서, ‘금속·서체·주조·조판 검증특위를 구성하여 (재)검정하여야 한다’는 요청을 받기에 이른다.
이렇듯 완전히 새로운 판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희한한 결론이 빚어낸 필연의 결과물인 것이다. 문화재청은 절대적 증명력을 갖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 분석의 결과물을 도외시하거나 근거 없는 추정(가능성)을 앞세워 수용 등을 유보했고, 일종의 연구영역인 서체비교, 주조·조판실험 등을 내세워 과학적 조사결과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어렵다고 설시(발표)했다. 일종의 연구영역에 불과한 서체비교, 주조·조판 등이 어떻게 과학적 조사결과란 말인가?
서체비교도 신청활자 제작 후 500년 지난 임진자와 유사도 분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선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다. 신청활자 중 ‘증도가자’로 분류된 금속활자 52자(중복자 포함)와 증도가에 찍힌 1,300여자 및 동국이상국집의 2,000여자는 누가 보아도 유사한 글자로 판정될 상황이다. 각종 기록 등을 통해 1230년대에 이미 수 만자 이상의 금속활자들이 존재하였음이 증명되어진 상황이다. 당시는 위조글씨가 나올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에, 이들 각수들의 글자만 확인해보아도 충분한 것이다. 특히, 1239년 증도가를 각인한 11명의 각수들은 1230〜1240년대 상정고금예문, 동국이상국집, 재조대장경 등을 각인한 각수들과 상당수 겹치는 상황이다. (금속)활자는 존재하였으나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이고, 진실을 규명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의 연구가 우선인 것이다.
주조방법과 관련하여 주조 방법 등에 대한 기록 등이 없는 상황에서 기초학술연구팀은 주물사주조법을 지정조사단은 밀랍주조법을 추정(주장)하였을 뿐이었고, 양 주조법 모두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제작과정에 목형을 빼내기 어려운 활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간이)실험결과 미스매치 부분의 마모 등으로 보아 주물사주조법이 합리적임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거론하고자한다.
조판실험 등과 관련하여 문화재청은 평균 또는 최대크기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하고, 혼합조판에서는 1행에 14자만 들어갔으며, 증도가 서책에 비해 좌우 열이 균일하지 않았다고 설시했으며, 동산문화재심의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은 이를 부결의 주요 요인으로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자료1)의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증도가 영인본 서책 29장 B면 및 30장 A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글자(서체)는 각수에 따라 각각이며, 광곽 역시 각각(29장 B면 17cm, 30장 A면 18.1cm)이다. 우선 두면만 비교해도 무려 1cm이상 광곽차이가 난다. 증도가 서책 44면 전부를 살펴본 결과, 가로는 17〜18.4cm였으며, 세로는 10.8cm〜12.5cm로 확인되었다. 한판에 들어가는 글자조차도 모두 발견되지 않았고, 더하여 가로·세로 차이도 이렇게 나며, 글자 또한 이렇게 차이 나며(29B〜30A면), 더더욱 가로 행 10자부터 15자까지 각양각색 각인되어 있는 상황을 도외시 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조판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지 정말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우선 활자본을 저본으로 한 번각본은 글자자체가 활자본보다 절대 클 수 없다. 이는 기초상식이다. 고려-조선 금속활자 판본검토 연구논집(2020년 발간) 등에서 활자본과 번각본의 광곽차이(평균 0.8〜1.7cm)를 보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런 기본적 사실을 무시하고 번각본 광곽에 활자를 조응하여 조판가능 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검증)오류로 판단된다.
관계당국(문화재청)은 7년의 검증·재검증 끝에 각종 감정결과보다는 소장자에게 책임(출처소명미흡)을 미뤄 부결의 의결하고 발표했다. 물론 출처는 철저히 규명함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발굴 유물이 아닌 한 통상 소장자는 자신의 소장경위만 알고 있을 뿐 출토 등, 전 과정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측정 및 각종 과학감정을 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닌가? 출처 등은 관계당국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이미 수차에 걸쳐 조사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본질(진·위)보다는 더 이상의 규명이 불가능한 소장경위 불명을 문제 삼아 부결하였다.
특히, 그날 심위위원 8명 중 3명은 기초학술조사단의 연구를 부정해야하는 지정조사단 멤버이다. 객관(공정)성 상실이다. 이쯤 되면 왜 부결되었는지 짐작되는 상황이다. ‘식견 없음’의 자탄 속에 소장경위를 핑계로 부결을 강행한 서글픈 드라마가 속기록에 담겨있어 이를 일부나마 공개하는 것이다.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문제는 문화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로서 이대로 뭉갤 일을 절대 아니다. 우선 중립적 심사위원회 및 각종 (재)검증특위를 구성하여 진실 규명에 다시 나서야 한다. 이는 문화강국을 향한 시대적 사명이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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