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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21, 2021.07.14)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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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1-07-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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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활자의 드러난 특징들에 비춰 주조방법은 주물사주조법이 유력

인류 시원의 금속활자 이렇게 묻을 수 없다. 재실험으로 진실 규명해야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 (자료1) 증도가자 평평할 평(平) 字 (증도가자와 고려시대 금속활자 65p)


당시의 주조방법, 누구도 알 수 없어…밀랍주조범⋅주물사주조법 모두 제작가능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제24회(6.30)에서 서체 분석 등과 관련, “국과수의 딥 러닝 등 3가지 (서체)분석방법 등을 무의미하다고 까진 할 순 없지만, 사실 국과수의 검증(분석)방법은 진본을 전제로 한 위조 인장, 서체 분석 방법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더하여 “신청활자가 위조되지 않았음은 각종 과학감정 등으로 분명하게 증명되었기에, 서체 분석 등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선행되어야할 (분석)방법은 ‘증도가자’ 38종 52개 활자와 번각본에 찍혀있는 1,385자 및 전체 9,344자와의 유사도 및 중첩도의 치밀한 분석”이라고 이의 필요성 등을 특별히 강조했다.

 

증도가 활자와 번각본 글씨에는 여말선초의 다른 금속활자와 확연이 구별되는 고자, 약자, 이체자의 쓰임도 빈번히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특징적인 점들 및 신청활자와 번각본의 미세한 차이 등을 고려한다면,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가 같은 글자(유사도·중첩도)임이 인정된다 할 것이다. 사실 당시(1220〜1230년대)는 위조 활자가 나올 상황이 전혀 아니었고, 더하여 현대의 위조범들은 서책을 구하지 못해 만들래야 만들 수조차 없다. 특히, 그 시대의 독특한 고서체, 약자, 이체자 등을 어떻게 알고 위조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38종 52자로 찍어낸 1,385자를 전부 추출, 정밀분석(유사도·중첩도)하여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가 동일한 것임을 밝혀내는 것이 새로운 과제이다.

 

주조방법을 둘러싸고 양측(학술조사팀vs지정조사단)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현재진행형이다. 주조실험을 둘러싼 쟁점 및 문제점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우선 절대적 증명력이 인정되는 탄소연대, 각종 과학감정 및 신청활자 38종 52자로 찍어낸 1,385자를 전부 추출, 정밀분석(유사도·중첩도)해야 하는 서체 (비교)분석과는 달리 주조·조판실험은 신청활자를 기준으로 당시의 주조·조판방법 등을 밝혀내야하는 연구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조실험결과는 어디까지나 참고(연구)영역일 뿐이고, 진위판명의 지렛대가 될 수는 없다. 당시의 주조방법은 누구도 알 수 없고, 용재총화에 최초 주조방법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청동기시대(BC4000〜 )부터 청동주물을 이용한 문자(상형문자 등)는 존재했다.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시대부터 청동을 이용한 각종 무기(비파형 동검 등) 등이 제작되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범종, 불상 등을 청동으로 광범위하게 제작한 것은 현존하는 실물들로부터 확인된다. 특히, 문자로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최고(最高) 범종인 상원사신종(725년, 국보36호) 및 대표범종인 봉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 771년, 국보29호)에서 제작 동기 등에 대한 명문(名文)이 새겨져 있다. 물론 이는 인쇄를 위한 금속활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본건 신청활자는 인류시원(始原)의 금속활자를 밝혀내는 중대한 문제다. 탄소연대측정, 각종 과학감정 등으로 시대와 위조흔적 등은 밝혀낼 수 있지만, 그 시대(1220〜1230년대) 주조 및 조판방법 등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겨우 조선 세종시대에 이르러 국조보감을 통해 조판기술의 개선을 짚어 볼 수 있으며, 연산군 원년인 1504년 성현의 용재총화에 언급된 금속활자에 대한 주조방법을 통해 그 시대 주조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활자 주조방법으로는 밀랍을 녹여내는 ‘밀랍주조법’과 상하 암·수틀을 이용하는 ‘주물사주조법’으로 대별된다(조선후기 민간에서 활용한 도토주조법도 존재).

 

‘밀랍주조법’은 밀랍에 글자를 새긴 다음 주형을 만들어 열을 가하여 밀랍을 녹여낸 후 주형 속 빈 공간에 쇳물을 부어 글자를 제작하는 방법으로서 비교적 정교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별도 금형을 제작하지 않는 한 똑 같은 글자를 만들어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사찰 등에서 범종이나 섬세한 불구류 제작 등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물사주조법’은 자본 선정 후, 필사과정을 거쳐 부자(父字)를 만들기 위한 판목수집 및 가공과 글자 새기기 과정을 거친다. 이후 암틀거푸집에 부자를 심은 후 쇳물이 흘러들어가는 홈을 만들기 위해 가지쇠를 박은 다음 쇳물을 주입한다. 이후 쇳물이 굳으면 가지쇠를 들어내 활자를 쇠톱으로 잘라내고, 쇠줄 등으로 연마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연마흔적이나 분할선이 나타난다.

 

일방적 실험결과를 과학으로 포장해 부결원인으로 내세움은 진실왜곡 

신청활자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살펴본 바와 같이, 금속활자는 ‘밀랍주조법’, ‘주물사주조법’으로 모두 제작이 가능한 상황이다. 몰론 분리주조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손톱만한 작은 크기의 활자를 굳이 분리하여 제작할 필요성이 있을런지는 숙고(연구)대상이다. 그렇다면 신청활자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심도 있게 관찰하면서 주조방법을 추론함이 합리적이다. 즉, 오늘날 알려진 주조방법에 일방적으로 꿰맞출 것이 아니라, 나타난 특징들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연구·추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당시의 (주물)제조 방법 등에 대한 기록 등이 없고, 누구도 그 방법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관계로 전형적인 연구영역 분야인 주조실험을 마치 과학적 조사로 포장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사안호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청은 “조사단에서는 동 활자가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하였다”면서 근거로서  “1) 활자의 뒷면이 평평한 것이 없고 홈의 모양이나 깊이가 다르고 홈면이나 활자 옆면이 평활하지 않은 것 등으로 볼 때 목형[父字]을 활용한 사형주조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공이 용이한 밀랍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홈형 활자 가운데 사형주조법으로 만들었을 때는 목형을 발취(拔取)할 수 없는 활자들이 존재한다”면서 몇몇 사례들을 제시했다.

 

▲ (자료2) 밀랍으로 주조되는 활자상태(사진출처=주조전수관)


우선 문화재청에서 근거로 제시한 “1) 활자의 뒷면이 평평한 것이 없고 홈의 모양이나 깊이가 다르고 홈면이나 활자 옆면이 평활하지 않은 것 등으로 볼 때…”란 부분은 밀랍주조·주물사주조법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고, “2) …홈형 활자 가운데 사형주조법으로 만들었을 때는 목형을 발취(拔取)할 수 없는 활자들이 존재한다”라고 하였는데, 높이 0.3(전체0.6의 절반)cm에 불과한 목형 부자를 쇳물을 붓기 전 진흙(모래)상태에서 송곳 등으로 흔들어 빼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하여 문화재청은 “홈-날개형과 네다리형 활자의 경우 글자 부분과 다리 부분을 별도로 만들어 붙여서 하나의 왁스모형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형주조법으로는 모형을 만들기도 어렵고 발취하기도 어렵다(사례 No.40 No.74 등)”라고 하였으나, 도리어 하나의 부자로 모든 활자제작이 가능함에도 밀랍조주를 위해 글자부분과 다리를 별도로 만들어 붙인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 드러난 특징들을 살펴보고 주조방법을 연구해야 함에도 ‘밀랍주조법을 강조하려다보니 이런 이율배반적인 논리모순까지 등장시킨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밀랍판에 한 개의 글자만 만들지 않고 원형(原型, master pattern, 금형)을 만들어 밀랍을 녹여 원형에 주조하면 동일한 글자와 동일한 크기의 활자를 여러 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밀랍을 녹여내는 방법으로 제작하는 과정에 특수공법에 해당하는 여러 개의 원형을 녹여낸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부자로 여러 개의 글자를 찍어낼 수 있는 주물사주조법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왜 밀랍공법으로 주조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다.

 

상형과 하형을 각각 조형하는 분할형 모형(split pattern)을 의미하는 상하 분리주조(分離鑄造) 방식으로도 활자제작은 물론 가능하다. 정교하게 접착시키면 얼마든지 가능하기는 하지만, 소형 활자를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제작할 필요성이 있을까 등에 대해서는 숙고(연구)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당시의 주조방법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 주조방법에 대한 정확한 내역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초학술조사단의 ‘주물사주조법’ 주장이나, 문화재청의 ‘밀랍주조법’ 주장은 모두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연구영역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800년도 더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신청활자의 주조방법에 대해 양측(문화재청vs기초학술단) 모두 자신들의 주장만이 진실인양 강변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당시의 주조방법을 알길 없는 상황인지라, 진위판단의 지렛대가 전혀 되지 못함에도 일방적인 실험결과를 마치 과학(실험)인양 포장하여 부결의 원인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임에 불과하다.

 

당시의 주조방법에 대해 기록조차 없고, 더하여 정확한 내막을 알 길이 없다면, 드러난 (신청)활자의 특징 등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선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된 유물(범종, 불상)들은 비교적 매끈하며, 너덜이가 심하지 않아 이를 제거하기 위한 연마흔적 등이 많지 않은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암·수틀을 합형시킨 후 주물을 부어 제작하는 ‘주물사주조법’과는 달리 밀랍을 녹여내는 공법이기에 분할선이 나타날 여지가 거의 없다.

 

이에 반하여 암·수틀 합형 제작 및 분리와 손질을 주요 공정으로 하는 주 물사주조법에서는 불가피하게 많은 너덜이가 생겨나 연마를 해야 하고, 합형  과정에서의 약간의 미스매치 등으로 대부분 분할선 등이 나타난다. 더하여 주물결함 등으로 인한 주물 땀(일명 ‘표면 돌기’)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한쪽으로의 쏠림현상이 나타기도 하고, 쇳물통로가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주물사주조법의 가장 큰 특징은 접합면 분할선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 (자료3) 주물사주조법으로 주조되는 활자상태(사진출처=주조전수관)


신청활자의 드러난 특징들에 비춰 주조방법은 주물사주조법이 유력

인류 시원의 금속활자 이렇게 묻을 수 없어다. 재실험으로 진실 규명해야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이 전형적 특징들이 위와 같다면, 신청활자들의 상태를 통해 이런 특징들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관점에서 신청활자의 제작상태를 살펴보면, 신청활자들에서 연마흔적, 분할선(층), U자 및 V자형 주입구, 상하좌우 측면 및 모서리 부분 등의 층이  발견된다. 이는 밀랍주조법에서는 생겨날 수 없는 주물사주조법의 전형적인 특징들인 것이다. 이런 특징들은 신청활자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금속활자에서도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신청활자에서는 밀랍주조법에서 나타날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기에 최소한 밀랍주조법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문화재청의 밀랍주조법 판단(주장)은 오류로 보인다. 물론 주조방법이 진위를 판단하는 Key는 아니고 연구영역에 불과하지만, 인류의 금속활자 시원을 밝혀내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재실험을 통한 진실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청활자의 주조방법 연구(실험) 등과 관련,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연구팀은 2014년 발주기관(문화재연구소)의 제외결정에 따라 주조·조판연구 및 실험 등을 진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면조사, 연마흔적 조사, 가지쇠 흔적조사, 충전재 조사, 상하분할선 조사 등을 통해 주물사주조법으로 추정하면서, “향후…(중략) 주조방법 및 조판방법에 대한 추가 연구가 진행되어야만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실물에 대한 연구가 완성될 수 있다(제8항)”라고 종합의견을 제출했다.

 

그렇다면 기초학술조사팀을 참여시켜 합동으로 (교차)실험을 진행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마땅함에도, 처음부터 밀랍주조법을 추정한 인사를 내세워 일방적 실험을 진행시켜 논리 빈약한 밀랍주조법을 주장, 이를 과학으로 포장시켜 부결논리로 내세움은 진실규명을 외면한 잘못된 일임이 분명하다.

 

도데체 신청활자에서 밀랍주조법의 특징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보이는 것들(연마흔적, 분할선 등)은 모두 주물사주조법 특징들 아닌가. 특히, 주물사주조법으로는 일부 활자들의 발췌가 어렵다고 지적했으나, 높이 겨우 0.3cm활자가 왜 빠져나오지 않겠는가. 공동으로 교차실험하면 바로 드러날 것이다, 문화재청 주장은 부결을 위한 일방적 논리임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자료4) 주물사주조법의 특징들이 보이는 활자상태(20176. 국회토론회 자료집 30p)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재청은 일부 활자의 목형발취 곤란 및 기타 이유 등을 내세워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판단(추정)하면서, 이를 과학으로 포장하여 부결의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드러난 특징들에 비춰 주물사주조법에 의한 제작 등이 유력함에도 말이다. 사실 주조방법은 진위판단과는 관계없는 연구영역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이론으로 그 시대의 주조방법을 재단할 것은 절대 아니고, 드러난 활자 특징들을 근거로 연구하여 밝혀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조·조판실험 등과 관련,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사안은 주조·조판실험은 밀랍주조법에 경도된 것으로 알려진 모 금속활자장이 진행했으며, 결과보고서 작성은 ‘주조분야는 밀랍주조법’이란 추가검증의견서를 제출한 최 모 지정조사단원이, 조판부분은 서체부분 추가검증의견서를 제출한 정 모 지정조사단원이 작성하였다는 점이다. 정 모 조사단원은 신청활자 지정부결에 맹활약을 한 문화재청 소속 전문위원이다. 특히, 처음부터 밀랍주조법을 주장한 인사가 보고서를 작성했다면 결과는 무조건 밀랍주조법인 것이다.

 

결국 우려대로 주조방법과 관련, 수많은 주물사주조법들의 특징들이 분명하게 나타남에도 문화재청은 막연한 추정에 불과한 밀랍주조법을 마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포장하여 부결논리에 차용함으로서 관계자(소장자, 기초학술조사팀)들의 강력한 반발을 자초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황당한 일이다. 이는 결국 국회로의 비화 및 재논쟁의 불씨를 지피는 결정적 소재로 작용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재검증(실험)외 상황을 피해나갈 묘책은 없다. 끝장 토론과 병행하여 공개적인 각종 재검증(실험) 등을 실시하면 어둠 속에 가려진 진실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청활자가 인류 금속활자의 시원을 밝혀내는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어물쩍 가공논리로 상황을 회피하거나 무조건적 외면으로 시간들을 뭉갤 상황은 더욱 아니다. 어쨌든 일방적인 주조실험 및 수많은 주물사주조법의 특징들이 나타남에도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일관된 결과(밀랍주조법)는 상식을 뛰어넘은 정말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종합하건데, 신청활자의 드러난 특징들에 비춰 주조방법은 문화재청이 주장(판단)하는 밀랍주조법은 최소한 아니며. 주물사주조법이 유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인류 시원의 금속활자를 이렇게 어이없이 묻을 수는 없다. 진실은 (재)실험 등으로 어렵게 않게 증명될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계속)  

 

▲ (자료5) 조선조 활자(현종실록자와 낙동계자. 주물사주조법 추정) (사진출처= 지식백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