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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21, 2021.06.30)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 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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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1-07-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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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간의 독특한 (동일)특징들은 충분히 증명

그 시대의 독특한 고서체, 약자, 이체자 등을 어떻게 알고 위조하나

 

2010년 9월1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교수로부터 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진위논쟁은 지난 10여 년 간 고미술·문화재계의 최대이슈였다. 논쟁·검증·재검증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부결하였으나, 남권희 교수 등 ‘증도가자기초학술조사연구팀’ 등의 (강력)반발과 국회학술심포지엄 등으로 (재)점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증도가자 진위논쟁의 내막(실체) 등을 분석·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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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1) 증도가자 착할 선(善) 字 (증도가자와 고려시대 금속활자 38p) 


최 이, 1220년 전후 증도가자 제작 및 증도가 발간. 전래 끊겨 1239년 번각본 발간  

 

‘세계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제23회(6.23)에서 국과수의 대형파동(가짜 추정)와중에, 신청활자에 대해 진행된 각종 과학감정 결과는 “접합, 가공, 덧칠 등 가공(위조)흔적이 없었고, 비교활자들인 ‘복’자 및 임진자 20점과 언문자 소자 10점들과도 다른 독특한 특징(성분) 등을 보이는 등, 고려금속활자 자체만의 특징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계당국(문화재청)은 ‘탄소연대측정, 서체 비교 분석, 주조·조판실험’ 등에 대해서는 온갖 추정과 가설논리를 앞세워 부결을 위한 논리로 차용하였지만, “…활자의 내부구조 및 표면조사에서도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과학 분석(감정) 결과에 대해서만은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과학 분석 결과(위조 흔적 없음 등)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관계당국은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친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결정적 증거물들인 각종 과학감정의 결과들에 대한 인용(수용)을 외면했다. 이는 과학이 입증한 실체적 진실을 추정이 묻어버린 사태로서, 실체적 진실규명을 외면하는 일과 다름없다. 문화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거양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일이다. 

 

고려금속활자 진위 논쟁은 서체비교에서 출발했다. 이는 그만큼 중요사안이다. 그러므로 신청활자와 번각본의 서체분석 쟁점 및 문제점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세계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금속활자 제작 기원에 대해 1)문종(1047〜1083)년간 설, 2) 숙종 7(1102)년 설, 3)12세기 중엽설, 4)고종19(1232)년 이전 설 등이 있으나, 증도가 번각본 최 이의 발문을 근거로 1232년 이전설이 통설이다. 어쨌든 ‘증도가자’로 분류된 금속활자(59점)가 ‘증도가’를 찍은 활자인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증도가 금속활자 제작 및 서책(활자본, 번각본) 발간을 주도한 최이(최우 개명)는 출생년도 불명이나 일부 연구가들에 의해 1166년으로 알려지고 있다(1166〜1249). 수선사 결사운동(조계종 개혁운동)을 일으킨 수선사 제1대 사주 보조국사 지눌이 1210년 입적하자, 뒤를 이어 혜심이 제2대 수선사 사주로 주석했다. 혜심의 덕망과 공력을 존경하고 있던 최 이는 혜심에게 개경 방문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1212〜2013년경 아들 만종, 만덕(1248년 환속, 항으로 개명. 1249년 집권)을 혜심의 제자로 삭발 출가시킨다. 아들 둘을 불가에 출가시킨 최 이로서는 불교계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을 것은 자명하다. 

 

더하여 1216년 원모국사 요세에 의해 백련사 결사운동(천태종.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수행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신행결사)이 진행됐다. 당시 불교계의 지지를 받아 국가를 운영하여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최 이로서는 수선사 결사 및 백련사 결사 등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 했을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불교계에서 진정 필요한 ‘증도가’ (활자)인쇄를 결심하였을 것이란 점은 넉넉히 인정된다.

 

그러므로 1215〜1220년경 사이에 선문에서 가장 긴요하여 으뜸으로 요구되는 최고의 수행지침서인 ‘증도가’를 활자(인쇄본)로 제작하여 수선사(송광사), 백련사(만덕사), 해인사 등지로 내려 보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런 상황에서 전란(몽고 침입)등으로 증도가 주자본의 전래(傳來)가 끊김에 따라 (강화)천도 후인 1239년 각수 11명을 모아 ‘증도가’를 목판본으로 번각(최 이의 발문), 수선사, 백련사, 해인사 등 전국 주요사찰 등에 두루 내려 보냈을 것은 분명하다.

 

진서, 행서, 초서에 모두 능한 최우는 신라의 김생, 고려의 탄연·유신과 더불어 신품4현으로 기록(동국이상국집)되고 있다. 집권 시기(1219〜1249)에  는 증도가(주자본/목판번각본) 제작(발간)을 위시하여 재조(팔만)대장경 제작(1236〜1351), 상정고금예문(전50권, 주자본. 1234〜1241) 및 동국이상국집(전 53권. 1241〜1242)발간 등을 비롯하여, 육조대사 법보단경, 화엄론절요, 정법안장, 종경촬요 등 수많은 불경 발간에 힘을 기울였다(발문 등). 또한 서방을 설치하여 문신들을 중용하면서 집권기반을 강화시켜 나갔다. 특히, 금속활자로 증도가 및 상정예문을 인쇄(발간)하였음은 이미 기록으로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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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2) 증도가(영인본)와 증도가자(자료제공=다보성갤러리)



증도가 9,344자(번각본) 중 1,385자 신청활자로 찍은 내역 확인(전수조사) 

신청활자와 1,385자 및 전체(9,344자)와 유사도 및 중첩도 입체분석이 출발선

 

무엇보다 ‘증도가’ 제작을 위해 금속활자를 제작한 것은 기록으로 증명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것도 최이가 아들 둘을 삭발 출가시켰고, 더해 백련사 결사운동이 본격 전개·정착된 1215〜1220년경 사이에 제작되어 ‘증도가’를 주자 인쇄하였음은 시대상황상 분명하다. 그렇다면 ‘증도가자’로 분류된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의 유사도·중첩도 등의 정밀 분석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정신청 내역을 살펴보면, 신청활자(101점) 중 ‘증도가자’로 신청한 활자는 마음 심(心), 밝을 명(明), 나 아(我), 하나 일(一), 가지런할 등(等), 무리 중(衆), 항상 상(常), 아니 불(不), 때 시(時), 부처 불(佛), 널리 보(普), 착할 선(善), 돌아볼 권(眷), 바 소(所), 넓을 광(廣), 보리수 보(菩), 큰 대(大), 슬플 비(悲), 벗을 탈(脫), 모든 제(諸), 온통 체(切), 사람 인(人), 할 위(爲), 아들 자(子), 경계 계(界), 빛 광(光), 어질 인(仁), 씨앗 종(種), 두루 편(徧), 너 이(尒), 법 법(法), 어조사 어(於), 낳을 생(生), 갈 행(行), 없을 무(無), 모 방(方), 명령 영(令), 옥돌 영(瓔), 원할 원(願), 평평할 평(平), 두루 요(遶), 복 복(福), 석 삼(三), 근원 원(源), 식혜 혜(醯) 등, 홈형, 홈-날개형 45종(동일자포함) 59점이다. 

 

이들 중 돌아볼 권(眷), 어질 인(仁), 두루 편(徧), 너 이(尒), 옥돌 영(瓔), 두루 요(遶), 식혜 혜(醯) 등, 7자는 증도가 번각본에 사용되지 않은 활자이다. 이에 반해, 마음 심(心)(3점), 큰  대(大)(3점), 바 소(所)(3점), 나 아(我)(2점), 착할 선(善)(2점) 하나 일(一)(2점), 무리 중(衆)(2점), 아니 불(不)(2점), 부처 불(佛)(2점), 할 위(爲)(2점), 법 법(法)(2점)은 중복 제작(동일자. 각2∼3점)됐고, 또한 사용된 동일자다. 신청활자 중, 동일자는 모두 총11종 25자이다. 

 

‘증도가’의 총 글자 수는 1회 사용자 628종 628자, 2회 이상 사용자는 966종 8,717자 등, 도합 1,594종 총 9,344자이다(제1〜제15장 앞·뒷면 3,273자, 제16∼제30장 앞·뒷면 3,249자, 제31∼제44장 앞·뒷면 2,824자. 발문 74자 제외). 많이 사용된 글자로서는 不(248회), 無(198회), 來(101회), 一(99회)자 등의 순서이며, 동백(東伯) 등 11명의 각수가 44장 앞·뒷면을 조각(彫刻)했다.

 

신청활자와 증도가 번각본 글자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돌아볼 권(眷) 등, 사용되지 않은 활자 7점을 제외한 52점이 사용되었다. 이들 중 중복 제작된 동일자는 살펴 본 바와 같이 11종 25점이다. 그러므로 2〜3개를 제작한 동일자를 1자로 산정하면 38자(종)이다. 즉, 38종(동일자 포함) 52개 활자로 1,385자를 찍은 것을 신청활자와 증도가 번각본의 글자 수 대조(전수조사)에서 과정에서 일일이 확인했다. 전체 9,344자 중 15%에 육박하는 사용량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마음 심(心) 58자,  2) 밝을 명(明) 44자,  3)나 아(我) 19자,  4)하나 일(一) 99자,  5)가지런할 등(等) 6자,  6)무리 중(衆) 13자,  7)항상 상(常) 15자,  8)아니 불(不) 248자,  9)때 시(時) 47자,  10)부처 불(佛) 23자,  11)널리 보(普) 7자,  12)착할 선(善) 13자,  13)슬플 비(悲) 8자,  14)벗을 탈(脫) 4자,  15)바 소(所) 23자,  16)넓을 광(廣) 1자,  17)보리수 보(菩) 8자,  18)큰  대(大) 35자,  19)모든 제(諸) 12자,  20)온통 체(切) 12자,  21)사람 인(人) 90자,  22)할 위(爲) 53자,  23)아들 자(子) 31자,  24)경계 계(界) 13자,  25)빛 광(光) 20자,  26) 씨앗 종(種) 10자,  27)법 법(法) 49자,  28)어조사 어(於) 15자,  29)낳을 생(生) 74자,  30)갈 행(行) 37자,  31)없을 무(無) 198자,  32)모 방(方) 11자,  33)명령 영(令) 36자,  34)원할 원(願) 1자,  35)평평할 평(平) 5자,  36)복 복(福) 4자,  37)석 삼(三) 33자, 38)근원 원(源) 10자 등, 동일자 포함 38종 52개의 활자가 1,385회에 걸쳐 사용 되었다. 

 

그렇다면 38종 52개 활자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 1,385자를 전부 추출하여 신청활자의 유사도 및 중첩도 비교분석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상황이다. 동시에 전체 9,344자 모든 글자와의 유사도 등을 세밀히 입체 분석해야 한다. 이것이 서체분석의 출발점인 것이다. 특히, 세계최초로 추정되는 서툰 글씨와 그로부터 500년도 더 지난 최고의 글씨인 임진자와 유사도 등을 단순 비교한 유사도 차이(0.9526-0.9359=0.0167)에 의미를 부여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일단 서체유사도 만큼은 지정조사단의 서체분과 위원들조차 인정한 상황이다.

 

증도가 번각본에 사용되지 않는 아래 네다리형 활자 42점은 현재까지 인본이 나타나지 않아 제작시기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증도가자에 비해 전반적으로 활자가 깊이 각인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세련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후기에 제작됐으나, 왕조교체 과정에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려금속활자로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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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3) 증도가 번걱본에 사용되지 않은 고려금속활자 42점(증도가자와 고려시대 금속활자 4P)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간의 독특한 (동일)특징들은 충분히 증명

그 시대의 독특한 고서체, 약자, 이체자 등을 어떻게 알고 위조하나

 

살펴본 바와 같이, 증도가(번각본)에 사용된 글자는 1회 사용자 628종 628자, 2회 이상 사용자 966종 8,717자 등, 도합 1,594종 9,344자다. 반면 신청활자 101점 중 증도가자로 분류된 활자는 59자이며, 이중 돌아볼 권(眷) 등 7자는 사용되지 않았다. 즉, 1회 사용 2자(廣, 願) 및 동일자 포함 38종 52개 활자가 1,385번 사용됐다. 전체 중 2.4% 내외의 글자 종(38)으로 15%내외(1,385자)의 글자를 찍은 것이다. 사용빈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활자와 번각본)의 유사도, 중첩도 등의 입체적 정밀 (연구)분석은 정말로 중요하다.  

 

특히, 증도가 활자에는 타 활자(조선활자 등)에서 볼 수 없는 고서체(명자), 약자, 이체자의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번각본 역시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등 신청활자와 번각본 글씨가 같은 글씨임을 (간접)증명하고 있다. 위조범들은 이런 것들까지는 절대로 위조할 수가 없다. 더하여 사용되지 않는 네다리형 활자 42점의 조각솜씨는 매우 세련되어 있고, 또한 희귀하고 어려운 글자들이다. 역시 이런 어려운 글씨들을 위조범들이 이토록 세련되게 조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설령 위조했다 하더라도 벌써 밝혀졌을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상식적인 점들이 진·위 논쟁을 더욱 무겁고도 치열하게 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신청활자의 세계사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번각본 전체글자(9,344자)와 신청활자 중 번각본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38종(52개) 활자와의 철저한 입체분석 및 이에 대한 선행연구가 우선인 것이지, 500년도 더 지난 최고활자와 단순 비교하여 0.0167%에 불과한 차이를 유의미하다고 설시할 상황은 아니다. 이들의 단순비교가 우선 납득되지 않는다.

 

우선 38종 52개 활자로 찍은 것은 추정되는 번각본 속의 1,385자를 전부 추  출하여 유사도 및 중첩도 등을 집중분석해야 한다. 물론 주자본과 번각본의 서체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절대 없다. 한 사람이 같은 내용의 글씨를 2장 필기하더라도 똑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상식(순리)적인 측면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활자 및 글자 속의 고유한 특징들을 찾아내는 문제와, 어느 정도 유사(중첩)하면 같은 서체로 인정할 수 있느냐가 서체(비교)분석의 핵심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활자가 틀림없고(탄소연대, 과학감정), 더하여 평균적 수준의 일반인 누가 보아도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의 유사도와 중첩도 등이 같은 글씨임을 인정할 정도로 비슷하다면 같은 글씨로 판단해야 함은 상식이다. 특히, 당시(1220〜1230년대)는 위조 활자가 나올 상황이 전혀 아니었고, 더하여 현대의 위조범들은 서책을 구하지 못해 만들래야 만들 수조차 없는 것이다.

 

사실,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의 유사점(일치점)은 너무나 많다. 특이한 고서체(명자), 약자, 이체자 사용이라는 독특한 특징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획과 획이 만나는 지점이나 예리한 마무리는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또한 글자모양이 대동소이하고, 큰 글자와 작은 글자들도 똑같이 섞여 있다. 심지어 획이 떨어져 나간 글자까지 현미경 등으로 관찰하면 똑같은 글씨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이런 특징들에 대한 비교분석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특히,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에는 ‘明’자 고서체인 ‘朙’자와 ‘∧’ 방향인 ‘善’자의 이체자 등이 똑같이 나타나고 있으며, 예리한 마무리 및 세로획을 갈고리(亅) 형태로 처리한 것 또한 똑같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해 亻과 彳의 세로획 끝부분을 왼쪽으로 삐쳐 올려 갈고리 획으로 처리된 부분이 신청활자와 번각본에서 똑같이 빈번히 나타난다. 이외에도 신청활자와 번각본에서 타 금속활자본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동시에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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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4) 밝을 명(明) 활자와 서체(번각본)(2014.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집. 97p) 


그렇다면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의 독특한 특징과 관련된 연관성은 충분히 확인된다. 즉, 같은 활자임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명들이다.

 

서체분석을 진행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윤곽선 분포 기반 수학적 계산기법을 통한 서체비교, 2)딥러닝 기반 유사도 비교, 3) 서체 중첩비교를 한 결과, 대조집단인 임진자와 비교하여 0.0167%차이를 나타내었다고 보고했으며, 관계당국은 이를 유의미한 차이로 설시했다. 최초의 금속활자(증도가자)와 이보다 500년도 더 지난 금속활자와 단순비교해서 말이다. 실제 임진자의 평균치보다 높은 활자가 11자, 초주갑인자(석보상절)보다 높은 유사도를 보인 활자가 무려 28자나 됨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하다고 설시하여 상황을 오도시켰다. 이런 상황은 도리어 신청활자와 번각본이 같은 활자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체분석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과학감정(분석)을 시작하기 직전인 2016년 10월 26일경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금속활자 7점이 모두 가짜’라는 자료를 언론에 제공하여 대형파문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런 여파로 신청활자를 무조건 가짜로 만들 것이라는 의혹을 휩싸여 있는 국과수의 서체분석 결과를 누가 어떻게 믿을 것인가? 결국 국과수의 애매모호한 분석결과는 혼란과 반발만 더욱 가중시켰을 뿐이다. 정말 이해 못할 상황이다. 

 

국과수의 딥 러닝 등 3가지 (서체)분석방법 등을 무의미하다고 까진 할 순 없지만, 사실 국과수의 검증(분석)방법은 진본을 전제로 한 위조 인장, 서체 분석  방법이다. 신청활자가 위조되지 않았음은 분명하게 증명되었기에, 무엇보다  우선하여 선행되어야할 (분석)방법은 ‘증도가자’ 38종 52개 활자와 번각본에 찍혀있는 1,385자 및 전체 9,344자와의 유사도 및 중첩도의 치밀한 분석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우선 증도가 활자와 번각본의 글씨의 자형과 서풍은 해정(楷正)한 구양순체에서 발원되어 변화되어진 독특한 당시(1200년대)의 글씨(활자)이다. 또한 여말선초의 다른 금속활자와 확연이 구별되어지는 고자, 약자, 이체자의 쓰임도 빈번히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특징적인 점들 및 신청활자와 번각본의 미세한 차이 등을 고려한다면, 누구나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가 같은 글자(유사도·중첩도)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인 것이다. 특히, 그 시대의 독특한 고서체, 약자, 이체자 등을 어떻게 알고 위조한단 말인가. 이는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상식이다. 그러므로 38종 52자로 찍어낸 1,385자를 전부 추출, 정밀분석(유사도·중첩도)하면 신청활자와 번각본 서체가 동일한 것임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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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5) 남북한의 고려금속활자.(2015. 문화재연구소 언론제공)①만월대에서 남북이 공동 발굴한 고려 금속활자 ‘단(전)’. ②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금속활자 ‘복’. ③북한 소장 고려 금속활자 ‘전’. ④~⑦북한 단독 발굴 고려 금속활자 4점.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http://www.mhj21.com/144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