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4.07.01) 고미술로 넓혀가는 한·중 문화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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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4-07-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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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로 넓혀가는 한·중 문화교류
다보성갤러리, 중국 고미술 권위자 초청 특강 및 공개 감정
송·명·청대 도자기, 석각의 8m 짜리 화첩, 홍산문화 유물 등
석각 작품, 북송 4대 서예가 황정견 작품가 473억원에 비견
“고대 도자기는 태토(본체), 유약, 조형, 문양 등으로 감별하는데, 먼저 본체의 재질과 반죽상태를 살펴보면 단면이 거칠고 기공과 이물질이 보입니다. 유약 역시 유면의 광택이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 구연부(자기의 주둥이 상단)에 칠해진 유약은 하얀색 같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은은하게 푸른새우색(하청유)을 띠고 있어요. ··· 지금 여러분 주변에 보이는 송나라 상식국 각화 연꽃문 정병, 원나라 청화 유리홍 봉황문 매병, 명나라 청화백자 운룡문개관, 청나라 분채 수도문상이병 등은 이러한 감별 기준을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작품들입니다.”
중국 고궁박물관 연구위원이자 문물학회 감정위원인 예페이란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다보성갤러리에서 ‘고대 도자기 감별법’을 주제로 특강을 한 뒤 20여점의 유물 감정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유휘 베이징 고궁박물관 과학연구처장 겸 국가문물감정위원회 위원, 구팡 중국 소장가협회 학술연구부 위원이 함께 참석했다. 모두 고미술 권위자들이다.
송나라 휘종 연간에 제작돼 황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식국 관장유상이유개병(尚食局 款酱釉象耳有盖瓶)’은 사자 형태의 뚜껑이 있고 어깨 양쪽에 코끼리 코 모양의 귀가 붙어 있는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간장색 유약인 장유를 썼다. 이들은 “값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4200만~5250만 위안(약 80억원~1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닥 굽 테두리는 담황색이나 주황색에 가까운데 이는 관요자기 입니다. ‘화석홍(火石紅)’이라 불렀어요. 고대 자기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본체와 유약이 만나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명나라 중기 청화자기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물고기 황조기의 배부분 색깔을 닮기도 했어요.”
예페이란은 모조품에 대한 정보도 들려준다.
“요즘 선홍색을 띤 모조품이 유행한답니다. 주의하세요. 현대 모조품은 가볍고 단면이 몹시 고릅니다. 이물질이 없어요. 쇳물을 묻혀서 마치 출토된 옛 것처럼 보이도록 효과를 낸 것들도 있습니다.”
유약은 시기별로 다양하게 개발되어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배가해 왔다. 오래된 도자기는 유약 속 광물질이 산화되어 표면이 갈라지기도 한다. 보존상태나 주변의 공기에 따라 상태가 변하는 것이다.
“조개 내면의 색상을 띠는 유약(합려광)도 썼습니다. 나전칠기 같은 광택이 슬쩍 은은하게 드러납니다. 도자기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서 보입니다. 고대 자기의 합려광은 결코 요란하지 않고 부드럽게 빛이 납니다. 반면 현대 모조품은 비교적 선명하게 티를 냅니다. 유리처럼 번들거리죠.”
이날 강연자와 청중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또하나 있다. 가로 826.3Cm, 세로 47Cm의 초대형 그림이다. 오대십국시대 후촉에서 태어나 송나라 시대에 활동한 석각(石恪·934~965)의 작품이다.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란 주전충(朱全忠)이 건국한 후량에 의해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10국을 통일한 979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오대)와 화중·화남과 화북 일부를 지배했던 지방정권(십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말한다.
이 작품은 석각의 그림뿐만 아니라 명나라 시대 유명 인사들의 글과 그림, 석각의 화풍에 대한 해설까지 포함하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특히 석각의 작품은 민간에서 볼 수 있는 예가 극히 드물어 그 희소성이 몹시 크다.
도교, 불교 인물 그림에 뛰어났던 석각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필치와 풍자적 요소로 유명하다. 이 작품에는 송나라 장수 철수(鐵遂), 명나라 정치가 이동양(李東陽), 저명한 시인·서예가 왕치등(王穉登), 서화가 송극(宋克) 등 여러 인물들의 글과 그림이 낙관(인감)과 함께 실려 있어 그들이 직접 감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석각의 그림과 어우러져 작품 가치를 더 높여준다.
철수는 ‘묘묵전신(妙墨傳神)’이라 써넣었다. ‘정신을 담은 묘한 글씨’라는 뜻이다. 이동양은 1508년 봄 그림을 감상한 일을 적은 ‘정덕무진춘왕정월(正德戊辰春王正月)’이란 글을, 왕치등은 ‘석각이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며, 또 다른 차원의 예술적 표현을 개시했다’는 내용의 찬사를 담았다. 송극이 기록한 ‘石恪字子專益暢人性(석각자자전익창인성)’은 석각의 성품과 예술을 높이 평가하며 후대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기 위해 그의 사조와 인품을 표현한 글이다.
이 화첩에는 석각의 화풍에 대한 해설도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림의 구도와 배치, 인물 묘사 등 석각 특유의 화풍을 분석하고 있다. 유휘 위원은 “그림의 완성도나 보존상태를 볼 때, 능히 90점 이상을 줄 수 있다”고 호평했다.
앞서 지난달 12일 우샤오화(吴少华) 중국소장가협회 고문, 션지아신(宣家鑫) 상하이 서예가협회 부주석, 천커타오(陈克涛) 상하이 소장협회 상무 부회장 등 중국의 저명한 감정가 3인이 다보성갤러리를 찾아 이를 감정한 바 있다.
이 때 션지아신 부주석은 석각에 대해 “황제가 설립한 궁중 화원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고집한 인물”이라며 “일반 대중 속으로 들어가 삶의 애환과 민간 정서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고궁박물관, 대만박물관, 남경박물관, 랴오닝박물관에서 석각의 작품을 봤지만, 민간에서 본 적은 많지 않다”며 “명나라 문인 이동양, 송극 등의 발문까지 더해져 소장 가치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이어 “두 달 전 일본에서 송나라 북송(北宋) 4대 서예가 중 한 명인 황정견(黃庭堅)의 작품이 경매에 나와 2억5000 위안(약 473억원)에 팔렸다”고 귀띔했다.
‘홍루몽’(紅樓夢·청나라 건륭제 때 나온 고전소설) 대형 화첩 일부도 선을 보였다. 가로 40.5cm, 세로 71cm 크기의 그림 34개가 화첩 1권을 이루는데, 이것이 32권이나 있다. 유휘 위원은 책상에 길게 펼쳐진 화첩의 이모저모를 확대경으로 면밀히 살핀 후 "기법이 세련되고 우수하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보성갤러리는 홍산문화(紅山文化) 유물도 5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홍산문화는 B.C.3000년 쯤 지금의 랴오닝성 서부에 위치했던 선사시대의 고고문화를 가리킨다.
구팡 위원은 홍산문화에 대해 특강했다.
“토양에 철 성분이 많아 흙이 붉었어요. 머리는 돼지, 몸은 용을 닮은 ‘C 형’ 옥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앞면과 뒷면이 구분되는데 주로 뒷면에 서로 만나는 구멍을 뚫어 몸에 지니기 쉽게 했어요. 대부분 크기가 작고 편편한 모양 입니다. 석관묘 안에 부장했는데, 시신 손에는 팔찌, 거북이 등을, 머리 아래엔 옥베개를 놓았어요. 고대 제사장이나 무당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가늘게 뜬 눈, 아랫 배가 좀 나오고 ··· 무당이 신을 받아들이는, 5000년 전 접신하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옥기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나중에 시베리아와 한반도로 번진 샤머니즘의 출발점이 홍산문화 입니다.”
홍산문화는 중국 네이멍구 츠펑시(赤峰市)의 홍산(紅山)을 중심으로 한 요서(遼西) 지역에 생성된 신석기 문화집합체를 말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4대 문명을 앞지른다. 홍산문화는 화하족(華夏族)이 창조한 중원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여기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나 적석총(積石塚) 등의 유물이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홍산문화를 창조한 주역은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東夷族)이다. 따라서 홍산문화와 한민족의 상관성에 주목하게 된다. 우선 암각화가 상관성을 잘 말해 준다. 한반도의 경우 울산 천전리 등 20여곳에서 암각화가 발견됐다. 그 기원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이나 몽골 초원에서 찾으려 했으나, ‘한국형 암각화’의 특징인 기하학 무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홍산문화에서 닮은 암각화가 발견돼 한국 암각화의 계통이 해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5500년 전의 제사터나 묘터인 적석총도 좋은 예다. 널찍한 돌로 위를 덮은 석관이 여러 구 나왔는데, 고구려 장군총이나 경주 신라고분 적석총과 같은 형태다. 석관 안에 흙을 채우지 않아 유물들이 대부분 깨끗한 상태로 발굴된다.
8000년 전, 옥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썼다는 게 홍산문화의 자랑거리다. 싱룽와 유적에서 출토된 옥귀고리가 대표적 유물이다. 강원 고성군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 패총에서도 형태뿐만 아니라, 제작 연대도 비슷한 옥귀고리가 발견됐다. 게다가 홍산 옥기에는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많은데 이는 단군조선의 상징인 곰 토템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홍산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다보성갤러리의 김종춘 회장은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과 중국의 고미술 수 만 점을 수집할 만큼 고미술계 권위자다. 하지만 중국 유물은 중국 문화재 최고 전문가들에게 그 가치를 평가받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 작품들 외에도 공개하지 않은 작품들이 부지기수 많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잘 선별해, 앞으로 많은 분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준비하겠습니다. 아직 감정을 거치지 않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감별과 감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김 회장은 “오랜 세월 모아온 중국 유물들이 창고에 그득히 쌓여 있어 이제 정리할 시기가 됐다”며 “일부를 판매해 박물관을 짓고, 전 세계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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